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치
2022.05.19 08:00
수정 : 2022.05.19 08:00기사원문
(서울=뉴스1) = 국회미래연구원 객원필진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코로나19는 역설이다. 가혹한 팬데믹 위기는 전세계에 고통을 안긴 동시에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다.
방역 1차전을 마친 지금, 전세계는 누가 더 빨리 일상으로 되돌아가느냐의 속도전에 돌입했다. 경제·사회 등 국가 전반의 시스템을 먼저 정비하고 디지털과 기후변화 등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누가 주도할지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질서 재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도 코로나19 이후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극심한 갈등으로 사실상 방치했던 구조적 문제, 번번히 합의에 실패해 후속 세대에게 미뤄뒀던 문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데도 정치적 이해득실에 밀려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문제들을 꺼내야 할 때다. 불평등과 양극화, 노동시장의 단절, 지속가능하지 않은 연금체계, 화석연료와 원전에 치우친 에너지 체계,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의 소멸 등 우리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문제가 놓여있다. 하나같이 난제들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문제가 크다. 진영에 갇혀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데 급급했던 우리 정치의 실패 때문이다. 최근 자주 회자되는 반지성주의는 진영논리의 다른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수많은 국가가 위기 속에 허둥대는 동안 정치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커져가는 추세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가운데 어떤 시스템이 더 나은지에 대한 비교가 나오는 것은 상징적이다.
기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불평등에서 촉발된다. 우리 사회도 자유로울 수 없다. 깊어지는 불평등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냉소만 남겼다. 정치는 그들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향한 불만을 부추기는 극단의 정치세력도 나오고 있다. 포퓰리즘의 그림자도 부쩍 아른거린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는 위태롭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더 많은 극단의 정치를 불러올 것이다.
정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종식하고 민주주의가 빠진 슬럼프를 벗어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뜻은 명확했다. 싸우고 헐뜯는 정치는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상생과 협치의 길로 가야한다. 유불리를 따지며 대중의 불만에만 영합하는 정치는 공멸을 자초하며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치를 민주당이 선도해야 한다. 대선 패배를 딛고 다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172석을 가진 거대정당으로서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과거 운동권이나 소수 야당 시절의 사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국회에서 재연되는 데엔 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더 크고 넓은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당내 민주주의를 먼저 강화해야 한다. 여당을 배척하는 대신 포용해야 한다. 그 방법이 협치의 제도화여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실력은 필수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발군의 정책역량을 보여야 한다. 미국 공화당은 헤리티지 재단을 통해 보수의 복음을 알릴 지식과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 미국 민주당의 외연에는 브루킹스 연구소가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진보진영의 경제정책과 산업정책, 노동정책, 복지정책을 설득력있게 만들 수 있는 싱크탱크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참신하고 역량있는 인재들도 두루 확보해야 한다.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 보수의 원조로 불리는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때로는 변화를 수용해 과감한 개혁을 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는 의미다. 나는 버크의 명언을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 진보진영이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펜데믹 속에서 대한민국은 유독 빛났다. 가장 효과적으로 방역에 성공했으며, 다른 모든 나라가 멈춰선 순간에 우리는 경제도 선방했다. 위기 속에서 더욱 높아진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는 측정이 어려울 정도다. 제조·IT 강국, BTS와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경제와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꿈을 조금 더 키워봐도 좋지 않을까? 매력적이고 스마트한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꿈 말이다.
정치가 먼저 그런 미래를 만들어갈 역량을 갖춰야 한다. 3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새로운 100년을 향한 출발선에 다시 섰다. 첫발을 떼자마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았지만 어쩌면 더 큰 도약을 이루어내기 위한 진통일 수 있다.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우리 세대의 역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의 사명이다.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