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2024.08.20 18:06   수정 : 2024.08.20 18:25기사원문
지난달 29일 영국의 사우스포트에 있는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일어난 흉기난동 사건으로 촉발된 폭력시위는 영국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흉기난동 사건이 대규모 폭력시위로 이어진 것은 피의자가 망명을 신청한 10대 무슬림이라는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경찰은 미성년자인 피의자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면서 가짜뉴스를 잠재우려고 했지만, 반이슬람·반이민(反移民)을 내세우는 극우세력의 폭력적인 소요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일부 국가는 영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촉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900명 이상 체포되고 400여명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이 사태는 진정되고 있다.

한 사회 내의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흔히 그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증폭된다는 것을 우리는 현대사의 여러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절대빈곤층이 1200만명 수준으로 증가하고 아동빈곤율도 25%에 달하는 등 악화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이민자를 타깃으로 삼아 분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번 폭력시위가 일어난 도시들이 대부분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나 지금은 낙후된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이에 대한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영국에서 일어난 폭력시위가 먼 나라의 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번 사태가 발생한 메커니즘을 보면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고 발전해온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문화 간 갈등과 이민족에 대한 혐오가 잠재되어 있다가 사회가 불안할 때마다 폭력적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보면, 한 사회 내에서 여러 문화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특히 '관용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에서도 문화 간 갈등이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세계 4대 경제강국에 속하는 독일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이민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폭력을 가하는 세력이 상존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다른 것'과 '낯선 자'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존전략일 수 있다. 특히 유럽처럼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지역에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있기 마련이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 '낯선 자'를 경계하고 때로는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접촉할 기회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구상의 여러 민족이 직간접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다른 것'과 '낯선 자'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배척할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진화의 소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장기간 이어진 저출생으로 인해 노동시장, 첨단기술 분야, 가정생활 등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유지·발전하기 어렵고, 대학도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학생과 교수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영국의 사례와 유럽 여러 국가의 경우를 보면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형성된 다문화 사회라고 하더라도 문화 간 갈등의 소지가 잠재되어 있다가 위기상황에서 증폭되고 폭력적으로 분출될 위험이 상존하는 것 같다.
다문화 사회로 이행이 급속하게 진행 중인 우리 사회가 유럽 몇몇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가 우리 사회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상호 이해와 관용을 바탕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근 대중매체에 다문화 관련 콘텐츠가 많이 늘어나서 국민의 의식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초중등학교와 고등교육기관에서도 다문화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세계인이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미래 사회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영국의 폭력시위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당면한 발등의 불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창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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