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대선] 안철수가 남긴것.. ¼토막난 주가, 개미 2천억 손실
1. 직장인 김철중(가명)씨는 올해 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자 매년 꼬박꼬박 묻어 뒀던 적금은 물론 딸을 위해 준비한 '어린이 펀드'도 해약해 안랩에 투자했다. 김씨가 투자할 당시 주가는 15만원대. 예상대로 안랩 주가는 16만72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잠시 '어~어~'하는 사이 손절매 시기를 놓쳤고, 지난 23일 안철수 후보가 갑작스레 출마를 포기하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2. 개인투자자 이용헌(가명)씨는 얼마전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식에 재투자하는 스톡론(주식연계신용대출)으로 안랩에 투자했다가 반대매매를 당해 1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이씨처럼 반대매매로 들어간 안랩의 계좌매수는 3226억원(국회 정무위원회 노회찬 의원 조사 결과)에 달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출마를 포기하면서 안랩 주식에 투자했던 개미들이 '멘붕(멘탈붕괴)' 상태다. '설마'했던 개미들은 "4만원대 주가마저 지키기 어렵게 됐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증권가는 요즘 안랩과 같은 이른바 '대선테마주'의 역풍이 거세다. 단기 수익을 노리고 뛰어든 상당수의 테마주 투자자들이 돈을 잃은 것이다. 엉터리 정보로 주가를 띄워 이익을 챙기는 '먹튀 세력'도 문제지만 테마주가 허황될 걸 알면서도 단타 투자에 나선 개인들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랩' 26일 주가 보면 안다?
안랩이 '개미들의 무덤'이 될지 주목된다. 그 디데이(D-Day)의 시작은 26일이다.
지난 23일 안랩 주가는 4만1450원까지 추락했다. 시가총액은 4150억원. 이는 지난 1월 4일 안랩 시가총액 1조6010억원 일 때와 비교하면 1조1860억원이 '증발'한 셈.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안랩투자자 18만7550명이 2640억원의 손실을 봤다. 금감원은 이들 중 99% 이상이 개인투자자라고 설명했다. 안랩은 조사 대상 기간에 469% 급등했다.
이처럼 안랩의 주가는 지난 9월 19일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을 기점으로 뚝 떨어졌지만 거래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지난 8월 하루 평균 36만주에 그쳤던 거래량은 9월 87만주, 10월 49만주에 이어 지난 23일에는 57만주가 사고 팔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치인 관련 테마주는 대선일인 12월 19일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며 "제 때 발을 빼지 못하면 '폭탄 돌리기' 게임에 뛰어든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가 하락으로 투자원금이 물려 있어도 빨리 털고 나오는 게 정답"이라며 "대선이 다가올수록 테마주 힘이 빠져 팔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과거 당내 경선 과정을 돌이켜볼 때 야권 단일화와 관련해 탈락한 후보 테마주는 곧바로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일부 안랩 임직원들은 주식매수선택권 행사로 이득을 챙겼다. 안랩은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에 따른 교부를 위해 자기주식 4500주를 장외에서 처분한다고 지난 5일 공시했다. 처분금액은 3442만5000원. 이 회사 고광수 상무는 지난 5월 29일 주식매수선택권 1000주를 2만5100원에 행사해 다시 12만7500원에 처분했다.
■테마, 위험한 도박?
테마주에 손댄 개미들도 '테마' 자체에 대한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여차하면 발을 빼면 된다'는 식의 자만과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대부분 착각으로 끝난다. 시세 조종 세력들이 이를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루머와 주가띄우기를 반복하면서 개미들을 개미굴에 가둬놓는다. 개미들은 항상 뒷북 매매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일정 시점이 되면 시세 조종 세력은 '먹튀(주가가 상승하면 대량 매도)'로 시장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매개체가 다양해진 것도 테마주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작전세력이 개미들을 유혹해 끌어들이고 시세차익을 남기는 시간도 그만큼 짧아졌다.
쌈짓돈으로 투자하는 개미들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미래산업처럼 최대주주가 예고 없이 보유 주식을 대거 쏟아내면 손실이 커진다. 벤처1세대로 꼽히는 정문술 미래산업 고문은 지난 9월 14일 자신이 보유한 미래산업 주식 2254만6692주(지분 7.49%)를 장내 매각했다. 부인 양분순씨도 139만159주(0.46%)를 함께 처분했다. 이들 부부는 427억원가량을 손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정 고문이 공시하기 전인 19일 이전 14일부터 주가는 하한가를 치기 시작했고, 지난 23일 주가는 428원으로 추락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개미들만 대규모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복지 테마주인 아가방컴퍼니의 김욱 대표이사 회장은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62만6210주를 매도했다. 이 때문에 주가는 17일 1만5750원에서 줄곧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난 23일 1만200원까지 하락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테마주로 분류되는 우리들생명과학도 주가가 4380원까지 치솟기 직전인 2월 17일부터 이승열 대표이사 및 친인척이 340여만주를 팔아치우기 시작한 이후 지난 23일 2295원까지 하락했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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