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두 남녀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이 뜨겁다. 자리도 깔지 않고 옷을 입은 채 허연 엉덩이를 드러낸 것을 보니 꽤나 급했던 모양이다. 망건을 쓰고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조끼 모양의 옷)를 걸친 청년은 누나 뻘은 되어 보이는 여인의 등판에 잔뜩 얼굴을 파묻은 채 달떠 있다. 하지만 속곳을 내리고 곰방대를 입에 문 나이 든 기생의 표정은 젊은 양반댁 자제의 춘정(春情)이 영 마뜩찮은 듯 냉랭하다.
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758~?)의 '19금 춘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15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옛 사람의 삶과 풍류-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춘화첩으로 알려진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과 신윤복의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에 실린 원화 15점이 공개된다.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은 단원과 혜원의 춘화첩 전체가 일반에게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 평문을 쓴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우리 춘화는 진달래꽃이 만발한 곳이나 물이 한껏 오른 버드나무 옆에서 남녀상열지사가 이뤄지는 등 서정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면서 "그림에서 배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든지 유머가 유독 강조된 것도 다른 나라 춘화와는 비교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 밖에도 조선 후기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공재 윤두서(1668~1715), 관아재 조영석(1686~1761), 긍재 김득신(1754~1822), 심전 안중식(1861~1919), 기산 김준근(19세기 중엽~20세기 초)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 60여점이 동시에 나온다. 특히 평민 출신의 풍속화가 김준근의 작품들은 이번에 새로 발굴된 미공개작으로 조선 후기의 일과 놀이, 관혼상제, 관리와 형벌, 무속 등 다양한 주제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스승이기도 한 심전 안중식이 돌잔치, 혼인, 장원급제, 관찰사 부임, 회혼례 등 성공한 양반의 화려한 일대기를 10폭 병풍에 담은 '평생도'도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전시는 오는 2월 24일까지. 관람료 3000~5000원. (02)2287-3591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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