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현장르포] “온누리 상품권으로 물건 사기보다는 ‘깡’에 혈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7:22

수정 2014.09.02 17:22

▲ 2일 오전 서울 영천동 영천시장. 곳곳에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지만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 2일 오전 서울 영천동 영천시장. 곳곳에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지만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에서는 매년 온누리상품권 발행 늘린다는데 막상 가지고 오는 손님은 3~4년 전과 비교해 절반정도 줄었어." (경기 부천 자유시장 상인 김희열씨)

"온누리상품권 가져오시면 수수료 8% 제하고 현금으로 돌려드려요." (상품권 매매 사이트 관계자)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9년 도입한 온누리 상품권이 소비자들의 외면과 관리 부실, 일부 상인의 도덕적 해이로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시장에 안 도는 온누리상품권

2일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10년 81.8%였던 온누리상품권의 누적 회수율은 2012년 86.8%에서 지난해 87.7%까지 늘었다. 시장 상인이 상품권을 받고 현금으로 찾아간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 등 수도권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경기 부천시 심곡동 자유시장에서 16년째 떡집을 운영해온 김희열씨(45)는 "3~4년 전에는 명절에 약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 온누리상품권이 들어왔는데 작년에는 절반수준으로, 올해는 더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천동 영천시장의 한 상인은 "상품권 하루 결제 금액은 2만~3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그 많은 상품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기청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총 판매액은 2010년 753억원, 2011년 2224억원, 2012년 4258억원, 2013년 3258억원으로 2013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세다. 이는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에서 상생협력 마케팅을 표방하며 구매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 구매 비율은 2010년 41.68%(314억원)에서 지난해 15.06%(491억원)까지 떨어졌다.

공공기관과 기업은 상품권을 구매해 직원에게 보너스나 상여금으로 지급하지만 막상 직원들은 전통시장에 가는 대신 상품권 매매사이트나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수수료를 떼고 현금을 챙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중고장터에는 하루에도 30건이 넘는 온누리상품권 판매글이 올라왔다. 상품권 액면가의 10~20%를 떼고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다.

■제살 깎아 먹는 '상품권깡' 등장

중기청은 개인판매 확대를 위해 한시적(6월 5일~ 8월 말)으로 실시하기로 했던 개인판매 10% 특별할인(당초 5%)을 오는 5일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높아진 할인율에 상품권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상인들이 가족 및 지인 등의 명의를 이용해 개인 구매 한도인 30만원까지 상품권을 구매하고 되팔아 차익 3만원을 남기는 방식이다. 가맹점당 한 달 상품권 교환 한도가 1000만원이기 때문에 최대 100만원까지 차액을 취할 수 있다. 대전에서는 한 상인이 1만7000여명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받아 49억원의 상품권을 되파는 방식으로 2억4000여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겨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품권깡의 경우 상인들이 직접 현금으로 교환한 것이므로 정부 통계에서는 '회수율'에 잡히게 된다. 다시 말해 온누리상품권이 전통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돼 전통시장 살리기에 기여했다고 보는 착시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이달부터 파파라치 제도(신고포상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신고자에게는 30만원의 포상금을 주고, 적발 가맹점에는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와 함께 시중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온누리상품권을 판매하는 등 상품권 판매를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문제가 된 상품권깡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상품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 자체 경쟁력 확보를 통해 시장을 찾지 않는 젊은층 등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이병훈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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