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토론회 자리에서였다. 권력층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제였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으로서 확실한 독립성을 보여야 한다는 '공자 말씀'이 이어졌다. 내가 제동을 걸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검찰을 준사법기관이라고 부르면서 생기는 오해가 있다. 검찰이 법원과 유사한 독립기관이라는 기대가 검찰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비난을 낳는다는 요지였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니고 행정부의 일부다. 결국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검찰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다른 교수가 발끈하고 나섰다. 법학교수로서 실망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을 더 요구해야 할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다는 꾸지람이었다. 검찰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는 듯해 씁쓸한 느낌이었다. 정치적 사건이라도 권력의 압력을 물리치고 독립적 수사를 관철하는 게 이상적 검찰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사권자 눈 밖에 나면 한직으로 돌다 옷을 벗어야 하는 게 검사의 처지다. 이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 미국의 특별검사제도다. 정치권력 관련 사건에서는 아예 제도적으로 독립된 수사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특별검사의 이름이 독립검사(Independent Counsel)인 것도 그 때문이다.
잊었던 일화가 떠오른 이유는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과 우리나라 카카오톡에 대한 수사 때문이다.
두 사건 모두 권력층에 대한 수사는 아니지만 정치권력이 검찰을 통해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허위사실 보도 혐의로 기소됐다. 물론 우리나라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감정적 반응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산케이는 원래 그런 신문이다. 그동안도 숱한 악의적 혐한, 반한 기사로 먹고살아온 것이다. 검찰은 산케이를 하루아침에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국제적 아이콘으로 만들어 버렸다. 권력층이 그렇게도 신경쓰는 국가이미지에 오히려 타격을 입힌 것이다. 산케이 보도는 반론보도나 정정보도 청구가 적정한 대응이다. 대뜸 기소부터 해버린 것은 권력층 문제에 관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없는 검찰의 현실을 웅변한다.
카카오톡에 대한 검찰의 대응은 한술 더 뜬다. '대통령 말씀'을 박아넣은 자료를 들이대고 카카오톡 등 민간기업들을 불러모아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박 대통령이 사이버상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직후였다. '허위사실 유포처벌, 실시간 모니터링, 상시적발' 등을 위해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해 문제 글을 직접 삭제 요청하겠다고 기세를 올렸다. 권위주의 냄새를 풍기는 회의를 검찰이 소집한 것도 문제지만 민간기업을 참석하게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수사기관인 검찰이 온라인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문제 글을 직접 삭제 요청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이른바 창조경제의 대표선수쯤 되는 카카오톡은 위기에 빠졌다. 안이한 회사측 대응도 문제가 있었지만 검찰의 월권이 알려지면서 수십만명의 이용자가 이탈한 것이다. 수백만명의 한국인 사이버 망명자가 가입한 '텔레그램' 등은 한국 검찰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오죽하면 대표이사가 차라리 처벌을 받더라도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히겠는가.
카카오톡 사건은 아예 검찰이 국익을 적극적으로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 권력층의 표정만 바라보다가 헛발질을 한 것이다. 권력층에 대한 수사뿐만 아니라 권력층 관련 수사에서도 특별검사처럼 수사의 독립성 확보방안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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