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한달전 정부가 내놓은 엔저 대책.. 현장선 "실효성 없다"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04 17:20

수정 2014.11.04 22:00

한달전 정부가 내놓은 엔저 대책.. 현장선 "실효성 없다"

달러 강세와 일본의 대규모 양적완화, 일본 내 공적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확대 등으로 외환시장에 엔화가 넘쳐나는 가운데 정부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지난달 8일 '엔저 대응 및 활용방안'을 내놨지만 시점이 늦은 데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기에는 괴리감이 크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특히 '아베노믹스'가 2012년 말 시작됐고 그에 따라 지난해 1월과 10월 각각 20조2000억엔, 18조6000억엔의 돈을 쏟아붓는 재정확대정책을 시행, 엔저현상이 충분히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늦었다는 목소리가 현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4일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48.57원(오후 3시40분 현재)을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8월 이후 처음으로 940원대까지 주저앉았다.

■엔저대책, 실효성 '글쎄'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발표한 엔저대책의 핵심에는 엔저를 활용해 시설재를 수입, 설비투자를 한 기업에 세제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포함돼 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내년 말까지 자동화설비 관세를 50%(중견기업은 30%) 감면해주고 가속상각제도도 효과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위기를 투자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제 등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역발상 대책'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문제는 시행 한 달이 지났지만 엔저를 활용해 실제 설비투자에 나선 중소.중견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한 기업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수요조사까지 했지만 해당되는 기업도 없었다"면서 "아직은 엔저현상으로 직접적 피해를 본 기업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산업부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시설투자 여부에 대한 수요조사를 했지만 해당 기업은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설문조사 대상기업군도 자동차부품 관련회사가 전부였다.

산업현장에서도 엔저대책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의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설비투자의 경우 발주부터 실제 제품이 수입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관세인하 조치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면서 "국내 업체들이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비투자보다는 부품 관련 관세인하 조치가 더 현실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환변동보험 지원 확대도 마찬가지다. 정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일본에 수출하는 농식품기업은 현재 489곳. 하지만 올 들어 환변동보험에 가입한 농식품기업은 지난 9월 말까지 47곳이었고 정부가 추가 지원을 밝힌 지난 10월에는 4곳이 더 늘었을 뿐이다. 이 수치에는 엔화뿐만 아니라 달러화 등 기타 통화 가입기업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본 수출 농식품기업 중 극히 일부만 환변동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중소·중견기업 환변동보험 이용건수는 달러화가 9565건인 반면 이의 16%인 1535건만 엔화 관련 보험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업체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이 저조한 것은) 상당수 업체가 대금을 받는 3개월 또는 6개월 후에는 지금보다 엔화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엔저현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보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기업들이 생각하는 바닥 시점에서 정부가 느지막이 대책을 내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엔화 약세 이어진다는데…

전문가들은 원.엔 재정환율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엽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내년에도 미국 경제 호조와 일본 경제 악화라는 구조로 인해 엔화약세 추세와 달러 강세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며 "현재 달러당 112~113엔 수준보다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실장은 "일본이 장기적으로 엔저대책을 지속할 순 없겠지만 초기에 일본과 경합하는 반도체.조선업 등에서 한국이 밀릴 수 있다"면서 "일례로 지난해 조선에서 일본 수주량이 우리보다 많았던 점을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수출단가 조정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한 차례 단가를 내린 일본 도요타 등은 엔.달러 상승에도 달러표시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있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고스란히 남기는 방법으로 힘을 비축한 뒤 차즘 가격 인하로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에 불을 지필 것으로 관측됐다.
이럴 경우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주요 수출 간판기업의 대미 수출전선에도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외환당국이 더 적극적인 원.달러 정책을 통해 원.엔 재정환율 약세를 상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는 "당국이 환율정책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공공기관들의 단기외채를 조기에 상환하는 등 적극적으로 달러 매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bada@fnnews.com

김승호 조은효 예병정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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