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 긴장
대기업은 환율 관리로 현재까지 큰 영향 없어
러시아 루블화가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이 수출물량 감소의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러시아 내수시장 경기 하락으로 소비활동이 줄어들면서 현지에서 생산하는 기업들도 판매부진의 덫에 걸렸다.
2일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중앙은행의 개입에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크림반도 사태에서 비롯된 정치불안과 서방세계의 제재에 유가하락 충격까지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다.
■수출.내수 감소 동시 타격
루블화 폭락으로 중견.중소기업 수출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중견기업인 로만손이다. 러시아에서 명품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로만손의 올해 러시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1.2%나 감소했다. 로만손 측은 패션성을 강화한 중저가 모델을 개발, 러시아발 악재 해소에 나설 계획이다.
로만손 관계자는 "루블화가 하락했지만 명품 소비시장은 아직 건재한 편"이라며 "다만 구매력이 예년보다 줄어들 수 있어 패션성을 강조한 합리적 라인으로 시장을 재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식품 제조사는 달러로 거래하던 러시아 구매자로부터 최근 계약물량을 취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회사는 10여개국에 식품을 수출을 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과 러시아 수출물량이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높아 이번 계약취소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 회사 대표는 "러시아 구매자 입장에서는 계약 당시보다 50%나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생겼으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구매자 입장을 이해하지만 당장 회사 매출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러시아 판매량 감소로 울상이다. 지난 10월까지 러시아 자동차 판매량은 199만1000대로, 지난해 228만1000대와 비교해 14.5% 감소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신흥국 시장에서 유일하게 감소세를 기록했다. 러시아에서 르노, 닛산, 아브토바즈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 10월 누계 기준 현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1% 줄어든 30만3000대에 그쳤다.
러시아 수출물량이 30%가 넘는 쌍용자동차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11월 누계 쌍용차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8% 줄었다. 같은 기간 내수 판매량이 5.9% 늘었다. 내수는 잘 되고 있지만 러시아 시장 위축으로 해외에서는 죽을 쑤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쌍용차는 지난 3.4분기 영업손실이 282억6000만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전분기 대비 적자폭이 125억원가량 늘었다.
■대기업, 긴장 속 환율 예의주시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루블화 움직임에 신경에 집중하고 있지만 환헤지를 통해 위험요소를 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환율 대응방안에 맞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루블화 하락이 다른 특정 통화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위험을 분산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달러화 외에도 엔화, 유로화, 루블화, 위안화, 헤알화 등 다양한 통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이에 자연스럽게 특정 통화가 오르면 특정 통화가 내리는 등 위험 분산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불할 통화와 들어오는 통화의 매칭을 최대한 맞추도록 자금운영을 해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생산법인을 운영 중인 LG전자는 러시아 내수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실 러시아 경제위기는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돼 왔다"며 "이에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리스크(위험) 헤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영향도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현지에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 경기침체 정도가 심각해지고 장기화된다면 일정 부분의 영향도 불가피한 만큼 다방면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러시아 지역에 진출한 식음료업계와 호텔업계는 러시아 경제위기가 아직까지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롯데호텔은 특급호텔인 데다 주 고객층이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신흥 부호층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에 호텔 매출이 크게 좌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호텔뿐 아니라 부대시설인 레스토랑 등도 (일반 레스토랑과) 가격대가 달라 찾는 대상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ahnman@fnnews.com
유현희 안승현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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