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한민국 골든타임 탈출하라] 변하지 않으면 끝.. 재계, 새 틀을 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31 17:44

수정 2014.12.31 20:21

[대한민국 골든타임 탈출하라] 변하지 않으면 끝.. 재계, 새 틀을 짜다

'700일에 달하는 최태원 회장의 장기부재에 따른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SK의 에너지 계열사 한 임원은 지난해 12월 9일 단행된 그룹 인사에 대해 이렇게 후일담을 전했다.

재계 3위의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4개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 C&C 수장을 전부 교체하는 '깜짝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중 두 명은 쉰을 갓 넘긴 새내기 최고경영자(CEO)들이라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당초 오너경영인인 최태원 회장이 700일 가까이 수감 중인 상황이라 예년처럼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던 재계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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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한 관계자는 "경영환경이 비주력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조직의 몸집을 과감히 도려내지 않으면 그룹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먼저 사람이 바뀌어야 조직혁신도 따라오는 게 당연지사"라고 말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우리 기업들이 구조적 성장한계에 직면하면서 2015년이 외환위기 때에 버금가는 큰 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던 저유가 지속, 유럽 경기침체, 환율 변동, 신흥국 저성장, 러시아 부도 우려, 내수침체 장기화 등의 각종 악재는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의 버팀목인 미국마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우리 경제와 기업의 앞날은 '시계 제로(0)'에 빠졌다.

다행스러운 건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로 대기업들이 선제적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본격적인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은 안으로는 내실과 성장을 위한 '새 틀 짜기'에 한창이다. 이와 함께 성장성이 없는 한계사업을 비롯해 당장 돈이 되더라도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털어내거나 합치는 '군살 빼기'도 필연적 경쟁력이 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태산을 넘기 전 최대한 몸을 가볍고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인적·조직쇄신으로 '새 틀 짜기'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28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올해 경영화두를 조사한 결과 51.4%가 '긴축경영'을 택했다. 긴축경영을 택한 최고경영자들은 전년보다 12%가량 늘어났다. 긴축경영을 관통하는 핵심은 사업구조 효율화로 압축됐다. 김판중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올해는 기업들이 최소한 지난해만큼 힘들 것"이라며 "현재 경영환경은 누가 얼마나 내실 있게 버텨내는가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10대 그룹은 하나같이 내실과 미래지향적 체질개선을 추진 중이다. 선봉에는 재계 리더인 삼성이 있다. 삼성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소비자가전(CE).정보기술모바일(IM).디바이스솔루션(DS) 등 3대 부문 체제를 유지해 겉으로는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불과 1년 전까지 전체 매출과 수익의 60% 이상을 담당하던 휴대폰사업에 과감히 '메스'를 댔다. 샤오미 등 후발업체의 추격과 기술평준화로 실적부진에 빠지자 '속전속결식' 변화를 준 것. 휴대폰사업을 총괄하는 IM부문은 사장단 7명 가운데 4명을 줄이고, 인력 재배치를 통해 비대해진 조직을 전반적으로 슬림화했다. 제품 전략도 삼성의 대명사였던 '다품종'에서 프리미엄·중가·저가의 3대 라인업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너가 장기 수감 중인 SK그룹은 핵심 계열인 에너지 분야의 경영위기 극복이 관건이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SK이노베이션이 신성장사업을 발굴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전담할 PI(Portfolio Innovation)실을 신설한 게 대표적이다. 실적부진의 진원지인 SK에너지는 에너지전략본부를 신설, 유가 하락 등 대외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했다. 통신분야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기존 이동통신사업과 별도로 사물인터넷 등을 내다본 미래조직인 플랫폼사업 총괄을 신설했다.

LG전자는 핵심 사업부인 냉장고와 에어컨 사업본부를 통합하는 대신 기업간거래(B2B) 조직을 신설하고, 석유화학업계 1위인 LG화학은 소재사업을 강화하는 미래지향적 조직쇄신을 단행했다.

지난해 누적적자 3조원이 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권오갑 사장 체제로 바뀐 지 한 달 만에 임원 262명 중 81명(31%)을 줄이는 고강도 인적쇄신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돈 돼도 판다'…집중하고 새 동력 찾아라

올해 경영환경이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예고하면서 우리 기업계에는 인수합병(M&A) 등 사업구조 재편 '광풍'도 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의 사업재편 움직임은 확실히 2013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재계 주요 기업들의 사업구조 재편 바람 역시 삼성그룹이 진원지이자 '압축판'이다. 삼성은 2013년부터 본격 추진한 사업구조 재편 작업을 지난해 전방위로 확대하며 마무리 과정에 접어들었다.

지난해만 삼성SDI·제일모직,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합병에 이어 하반기 삼성중공업·삼성엔지어링 합병 추진까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결정판은 지난해 11월 말 방위산업(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과 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비주력 4개 계열사를 한화에 1조9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한 것. 비주력이지만 이들 4개사가 한 해 수천억원의 이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삼성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매우 심각'이라는 방증이다.

삼성 관계자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원칙이 위기 시 또다시 발휘됐다"며 "삼성의 사업재편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된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 하루 동안 7개 계열사를 3개로 줄이는 기록적 계열사 통합작업을 추진했다. 현대위아가 현대위스코와 현대메티아를 흡수합병했고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씨엔아이를, 현대건설은 인재개발원을 각각 흡수했다. 연관 사업이나 중복 사업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비용절감을 통한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였다.

SK와 LG는 대규모 M&A나 사업구조 통합 대신 미래를 내다보고 가스화학(SK가스)과 수처리사업(LG전자)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SK가스 관계자는 "가스화학 사업은 석유화학을 대체하고 셰일가스 시대를 대비하는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이장우 한국경영학회장은 "올해 기업들의 경영화두는 '구조혁신'"이라며 "기업들이 정보화 혁신을 이룬 지 20년이 지나면서 제2의 구조혁신에 직면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과거에는 속도경쟁 전략이 통했지만 이제는 중국 등 경쟁국들에 따라잡힐 위기"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효율화도 중요하지만 구조혁신은 '신성장 패러다임'의 발굴 없이는 불가능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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