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광복 70년, 통일로 30년] (3·①) 한반도 통일, 독일서 배운다.. 통일 이후 동독 역사 청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31 17:49

수정 2014.12.31 20:36

정치이념 배제하고 객관적 사료 검증해 동·서독 차이 극복
범죄 조사 대상.. 20만~25만명 700건 법정으로 금고형 20건 이하 배상법 제정돼
1992~2005년 17만명 보상 받아 역사 바로 잡아 더 기억하자는 게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는 분단 당시 세워져 있던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청소년들을 비롯, 수많은 독일 시민들이 이 지역을 수시로 방문하며 분단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는 분단 당시 세워져 있던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청소년들을 비롯, 수많은 독일 시민들이 이 지역을 수시로 방문하며 분단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 베를린(독일)=김유진 기자】 독일은 20세기 들어 나치 독재와 더불어 1949~1989년 사이 동독 공산주의 독재역사를 경험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했고 동독 공산주의 사회를 서독 민주사회와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동독 역사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는 통일 독일의 주된 담론이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에는 서독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진 동독의 다양한 시민단체, 지역언론들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장벽 붕괴 이후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되기까지 1년간 동독 역사를 청산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문제를 비롯, 비로소 동서독이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이어졌다.


■사실에 근거한 독재청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통일 독일이 1990년 이후 전개한 동독 사회주의 독재정권에 대한 조사 및 진상파악 과정은 수준 있는 독일의 민주주의를 보여준다.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검증을 이뤘다는 점이 돋보인다.

1990년대 독일 법정은 구동독 체제 아래서 발생한 범죄들에 대해 통일독일의 사법조항뿐만 아니라 동독 당시의 법도 적용시켰다. 조사 대상이 된 범죄는 크게 △장벽과 국경 근처에서 발생한 발포·사살명령자에 대한 처벌 △동독 법률의 임의적·정치적 적용으로 인한 불합리한 수감 및 사형선고 △동독 정부의 서독 시민 납치(40년간 400건 이상) △동독 감옥에서의 가혹행위 △서독에 대한 동독의 조직적 간첩행위 △서독 법을 위반한 동독으로의 기술 수출 행위 등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구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독재청산재단의 안나 카민스키 사무총장은 "동독에 20만~25만명의 정치범이 있었고 이 중 약 10만건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시작해 700건이 법정으로 보내졌다"며 "그 중 형을 받은 것은 약 300건, 특히 금고형을 받은 것은 20건 이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독재청산 작업이 공산주의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가운데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독재하의 범죄를 청산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희생당한 자들에게 적절한 형태로 보상해주는 문제 역시 통일 이후 중요한 과제였다.

1992년 처음으로 배상법이 제정돼 2005년까지 약 17만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형태로 보상을 받았다. 또한 독일 외무부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과 협상을 벌여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로 유배당한 1만3500명가량의 독일인들에게 복권·재활 기회를 줬다.

통일 이후 1994년 7월 공산주의 범죄행위 개정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 동독 시절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아 고등교육 기회나 직업선택 기회를 박탈당한 희생자들을 복권시키고 재정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법으로 명문화됐다. 1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복권 및 보상을 신청했고 이들 중 절반 정도가 대상자로 선정됐다.

■"청산은 더 기억하자는 의미"


독일 연방정부가 이처럼 구 동독 시대의 잔재를 없애려 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것과 차이가 있다. 역사를 바로잡고 더욱 기억하자는 측면에서 청산 작업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는 것은 독일에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점차 사회의 리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를 재조명하는 작업 역시 일정부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독일에서는 1975~1989년 동독에서 태어난 이들이 스스로를 '제3세대'라 지칭하며 부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민스키 총장은 "이 세대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통일과 관련해 얼마나 큰 어려움(실직 등)을 겪었는지 직접 봤고 부모님들의 물질적, 정신적 가치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통일이 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구 동독이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카민스키 총장이 몸담고 있는 독재청산재단의 경우 이같은 움직임에 힘입어 통일 이전 동독 독재의 원인과 역사,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 작업을 한다.
비단 공산 독재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독일 통일에 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재단을 이끄는 이사회는 5년 단위로 선출되며 독일 연방의회 의원, 독일 연방과 베를린 주정부 관리 및 구 동독 독재문제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 재단에는 현재 25명의 직원이 연간 예산 약 500만유로를 바탕으로 일하고 있다.

july2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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