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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6 17:47

수정 2015.01.06 17:47

[노동일 칼럼]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어린 시절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입니다. 지금도 그 가락을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가 우리 것일세'로 끝나는 가사도 얼추 기억납니다. 나만이 아닌, 5060 이상의 세대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흥겨운 멜로디와는 달리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극한 가난을 벗어나 우리도 '잘살아야 한다'는 비장함이 서려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다짐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부자와 잘산다는 말을 같은 뜻으로 씁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부잣집을 가리켜 '잘사는 집'이라고 합니다. 잘사는 집 아이라고 하면 돈 많은 집 자식을 의미하는 데 의심이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잘사는 것은 부자를 의미하고 부자는 곧 잘사는 것일까요. 엄밀히 말해 둘은 다릅니다. 사전을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부자와 잘사는 사람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자도 물론 잘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도 잘못 살 수 있습니다. 반면 부자가 아니어도 잘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박하게 말해 바르게, 곧게,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며 살면 잘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잘못 사는 것입니다.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차이가 없는 것이죠.

'잘살아보세'라는 각오로 피땀 흘린 결과는 오늘날 보는 대로입니다.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더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 국가가 된 기적이 그 산물입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를 만든 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성취입니다. 이제 곧 세계에서 6번짼가 7번째로 3050 클럽에 가입한다죠.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의 국가라는 겁니다. 굴곡이 있고 어두움이 있는 역사라고 폄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잘사는 것과 돈이 많은 것을 같다고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가정환경조사서에 월셋집이 부끄러워 전셋집이라고 적어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없는 방 하나에서 온 가족이 부대끼느라 불화도 있었습니다. 원조밀가루로 만든 빵과 돌덩이 같은 우유도 배불리 먹지 못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값이야 차이가 있지만 많은 사람이 번듯한 내 집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방이 돌아가고 화장실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는 널찍한 아파트에 살게 됐습니다. 배고픔은커녕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생각은 그때와 똑같습니다. 개인의 성공도, 나라의 성취도 하나의 가치로 평가합니다. 연봉이 얼마인지,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국민소득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예전에 비해 엄청난 부자가 됐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우리는 돈이 많되 잘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얽힌 결과를 눈앞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내가, 우리가 그 먹이사슬 어느 지점에 얽혀 있음을 부인키 어렵습니다. 세월호 이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이미 울린 경고를 무시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부자와 잘사는 것은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부자가 나쁘다거나 가난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님을 잘 아실 겁니다.
진정으로 잘사는 게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보며 올 한 해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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