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김영란법 후폭풍] '퇴직 관료 기업행' 해묵은 관행 문제없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04 17:28

수정 2015.03.04 22:33

기업 '전문성 필요성'에 부합… 인맥 악용 우려 커

[김영란법 후폭풍] '퇴직 관료 기업행' 해묵은 관행 문제없나

퇴직 관료들이 줄줄이 기업으로 이동하는 해묵은 관행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중앙·지방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 등에 대해선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나 소방, 감사, 조세, 건축, 토목 등 인허가부서 등에 근무했던 공무원은 7급 이상이면 모두 취업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없으면 상관없다.

그러나 오는 3월 31일부터 공직자윤리법이 대폭 강화된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으로 불거진 '관피아'가 민간기업이나 유관단체로 쉽게 옮겨가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강화했지만…

4일 정부에 따르면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은 취업제한 기간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31일 이후에 퇴직한 4급 이상 공무원 등은 2018년 4월 1일 이후에나 취업제한 대상 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허용된다.

사기업으로 한정했던 취업제한 기관의 범위도 대폭 늘어난다. 기존에는 △자본금이 10억원 이상이면서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원 이상 사기업 △이들 사기업이 가입하고 있는 협회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원 이상인 법무·회계법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연간 외형거래액 50억원 이상인 세무법인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비영리 분야의 안전감독·인허가·규제·조달 등 관련 유관단체, 대학과 학교법인, 종합병원,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복지법인 등에도 취업이 일정 기간 제한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제한 사기업 숫자는 1만3586개(법무·회계·세무법인 81개 포함)였다"면서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을 적용할 경우 대상 기관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새 법은 업무 관련성 기준을 '퇴직 전 5년간 소속 부서'에서 '퇴직 전 5년간 소속 기관'으로 크게 확대했다.

지난달 27일 두산중공업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긴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경우 법을 살짝 비켜가긴 했지만 위원장이 공정위 전 부서의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지시를 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업무에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까지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부서 수장을 맡았다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모든 고위공무원이 마찬가지다.

■공직자 재취업, 득과 실은

김기정 연세대 행정대학원장은 "인력활용 관점에서 보면 (관료가 기업의) 사외이사가 되거나 산하기관장이 되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론 좋은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공정성, 공공성 등을 갖고 자본에 대해 일정 자율성을 갖고 있어야 할 정부가 (전직 관료의 사기업 취직으로) 기업이나 시장을 통제하는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재호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도 "관료들이 퇴직 후에도 전문성을 인정받는 등 기업으로 가는 데 대한 필요성이 있다"면서 "그러나 (기업에 간) 관료가 재직했던 곳에 청탁을 하거나, (관료를) 로비의 파이프로 뻔히 악용하려는 (기업의) 행태는 옳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사정기관이나 감독기관을 거친 거물급을 때만 되면 사외이사나 감사 등에 앉히는 기업들을 놓고, 이들 관료를 부정적 통로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김영란법'이 통과되면서 기업들의 기존 로비 관행이 '인맥 로비'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관료 영입이 악용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부처를 떠난 하늘 같은 선배가 특정 기업의 사외이사나 감사로 가 있는 상황에서 후배 공무원이 해당 기업의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에 간 선배 공무원의 자리가 후배 공무원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경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훌쩍 넘는 연봉의 유혹을 이기는 것 역시 힘든 일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도덕성도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균성 경희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에선 이해관계인이 청탁하는 건 허용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사외이사를 이해관계인으로 볼 수 있어 오히려 김영란법 통과로 은밀한 로비가 더 성행할 여지가 있고, 관료들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관료의 전문성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사외이사행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의 책임을 강화하고, 사외이사로서 활동을 엄격히 수행토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취지를 살려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승호 정지우 조은효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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