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서울시 지침
모든 교구비 보육료 포함.. 부모가 제공할 필요없어
기저귀·분유·물티슈 등 영·유아 개인물품만 예외

"색종이, 풀, 가위, A4 용지, 휴지, 낮잠이불, 칫솔, 치약, 물티슈, 색연필, 크레파스…."
모두 어린이집 입소 준비물이다. 자녀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은 하나라도 빠트릴까 봐 대형마트나 주변 문구점에서 리스트를 챙겨가며 하나하나 구매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준비물로 받은 리스트들을 올린 게시글들이 잇따른다. 물건을 구입한 부모들의 머릿속은 "정말 이런 것까지 사서 보내야 하느냐"는 의문으로 꽉 채워져 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각티슈, 물감, 색종이, 스케치북, 가위를 보내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냈고 부산에서는 연필, 지우개, 비누, 필통, 접착테이프 등 종류만 20가지를 요구한 곳도 있다.
■준비물 20종 요구한 어린이집도
이처럼 갖가지 기상천외한 준비물을 가져오라 하지만 법적으론 어린이집이 부모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품목은 없다.
9일 서울시 관계자는 "교재·교구비가 보육료에 포함돼 있어 이 모든 것은 어린이집이 부담해야 한다"면서 "부모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는 한 준비물은 구입해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영·유아 개인 물품은 예외로 적용된다. 기저귀, 분유, 물티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터넷 상에서 '물티슈는 되지만 각티슈는 불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5 보육정책 안내' 자료에도 어린이집 준비물은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낮잠이불, 베개, 칫솔, 치약 등이다. 영아들의 경우 분유, 우유병, 가제수건 등의 개인용품들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표준교육과정을 위해 필요한 풀, 가위, 색종이, 크레파스 등의 물품은 어린이집에서 부담한다고 못 박았다.
학부모가 금전적으로 부담하는 부분도 필요경비 항목인 입학준비금과 현장학습비, 특별활동비에 한한다. 지난해 서울지역 어린이집의 평균 입학준비금은 9만3600원, 연간 행사비는 7만7390원, 차량운행비는 월 3만2860원이었다.
이처럼 법에 정해져 있지만 상당수의 사립 어린이집들은 버젓이 각종 물품을 요구하고 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지갑을 연다. 아이를 맡기는 을(乙)의 입장에서 시작부터 밉보여서는 안된다는 이유다. 한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법에 없다는 이유로 준비물을 보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돌려주면 끝… 솜방망이 처벌
이처럼 규정에 없는 준비물을 요구하면 안된다고 알면서도 학부모들은 매년 준비물로 반복적으로 보낸다. 정부나 지차체들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만 일삼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육료는 표준보육과정을 하라고 주는 것이다"면서 "표준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물품 이외의 것을 받는 어린이집은 '필요경비 수납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필요경비 수납 위반의 경우 행정지도 내지는 시정명령을 받게 된다. 불법으로 받은 물품을 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침, 공문 등을 통해 매년 안내를 하는데 올해는 아동학대 사건 때문에 늦어졌다"면서 "받으면 안되는 물품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이달중 지침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유아들의 대부분은 이미 어린이집 입소를 끝낸 상황이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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