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은행들이 소속 임직원들에게 대출금리 특혜를 주고 있는 게 드러나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5㎡ 이하) 집을 살 때 임직원에게 최대 2000만원까지 연 1%의 초저리로 돈을 빌려줬다. 그땐 일반대출 금리가 연 10%를 넘었으니 1%는 거저 빌려준거다. 많은 직원들이 한도까지 대출받아 주택을 구입한 건 물론이다. 당시에 서울의 국민주택 규모 새 아파트 분양가가 1억원 정도로 이자부담 없는 2000만원은 큰 종잣돈이었다.
당연히 형평성 시비와 함께 소비자들의 돈으로 은행이 자신들 잇속만 챙겼다며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은행직원 특혜 대출은 폐지됐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일반 금융소비자들이 꿈의 금리인 1%대로 대출받는 시대가 됐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초저금리라며 전세자금을 연 3%(일반 주택자금은 6∼7%)에 특별대출한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때만 해도 금리 1%대는 일본이나 미국 등 남의 나라 얘기였다.
그게 현실이 됐다. 당장 내 집 장만 등 여러 사정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신이 났다. 불과 2∼3년 새 대출금 금리가 절반, 그 이하로 뚝 떨어져 대출금 상환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유자금을 굴리는 이자소득자들은 저금리의 굴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불황에 저금리마저 겹쳐 그마저 돈을 굴릴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에겐 단 0.1%포인트의 이자소득을 더 올리는 게 절박해졌다. 이런 세태가 '금리 노마드(nomad)족'을 탄생시켰다. 원래 노마드는 유목민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가 '노마디즘'이라는 말을 쓰면서 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어떤 목표를 좇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유비쿼터스를 즐기는 유비 노마드족, 전셋집 찾아 3만리에 나선 전세 노마드족 등이다.
저금리시대와 함께 국가예산(올해 376조원)의 2배를 넘는 800조원이 시장을 떠돌고 있다. 그래서 금리 노마드족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예금주들이 같은 은행에서도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지점을 찾아 다니고 온라인을 활용하기도 한다. 은행원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다른 은행으로 예·적금을 갈아타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가계대출 부실화 우려와 함께 금리 노마드족 탄생이라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몰고 왔으니 초저금리시대가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닌 듯싶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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