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fn ‘성완종 파문’ 4대 제언] (5·끝) 전화위복의 기회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3 17:11

수정 2015.04.23 21:49

"각종 의혹 철저히 해소 정치개혁 계기로 삼아야"

"정치·경제 분리하고 경제법안 최우선 처리해야"
사회=노동일 경희대 교수
좌담자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평론가), 김정호 연세대 교수(前 자유기업원장), 오상봉 前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홍성걸 국민대 교수(국회윤리심사자문위원)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22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한 긴급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정국 해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오상봉 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노동일 경희대 교수, 김정호 연세대 교수, 홍성걸 국민대 교수, 김민전 경희대 교수. 사진=박범준 기자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22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한 긴급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정국 해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오상봉 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노동일 경희대 교수, 김정호 연세대 교수, 홍성걸 국민대 교수, 김민전 경희대 교수. 사진=박범준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파이낸셜뉴스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사회적 파장과 관련정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전문가들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22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노동일 경희대 교수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살리기나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국정개혁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참석자들은 또 정치 현안과 경제를 분리해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리면서도 정치개혁을 이뤄내는 '투트랙'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즉 '성완종 리스트'를 통해 불거진 각종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혀내는 작업과 동시에 각종 구조개혁 및 내수시장 활성화 등의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 경제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를 맡은 노동일 교수는 정치권을 향해 "여당이 집권당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야당 역시 이번 사태를 정쟁 카드로 이용하기보다 철저한 정치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문했다.



[fn ‘성완종 파문’ 4대 제언] (5·끝) 전화위복의 기회로

―'성완종 리스트' 후폭풍으로 현직 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상황에서 이 총리가 사의를 밝혔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나.

▲김민전 교수=국민이 가장 안타까워 할 것 같다. 사실 최근 사상 초유의 사건이 워낙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이런 상황을 국민이 자주 접하면서 '한국 정치가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직 후보자의 경우 결격사유가 있는데도 인사청문회에서 무리하게 통과시키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 같다. 이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언론인 회유, 협박 등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또 언론사별 보도를 보면서 현행 '정치자금법'이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번 일이 정치개혁의 도화선이 돼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성걸 교수=정치에 대한 기대 수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간 우리 정치는 많이 깨끗해졌다. 지난 2004년 선거법 개정 이후 한꺼번에 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구멍'이 출판기념회, 각종 경조사,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음성적으로 벌이지는 자금수수 관행 등이다. 이번 '성완종 사태'를 바탕으로 이런 불법적 관례들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령 국회의원 1인당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고 제한해 놓으니 불법 후원금이 생기는 것이다. 후원금 한도를 현실에 맞게 반영하면서 누가 돈을 냈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만약 투명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원하는 일만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투명성이 최대한 보장된 상황에서 자발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아 이번 사태를 발단으로 제대로 된 정치과제가 나왔다고 생각된다.

▲김정호 교수=이번 사태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좋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홍 교수님 말처럼 '정치자금 양성화'를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해서 정치자금을 쓰는 것인데, 기준을 정해놓고 일정 한도 이상 되면 못 쓰게 하니 불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이번 사태처럼 후원금 받는 일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면 무슨 로비를 받아서 어떤 법을 만들었는지 아예 정보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 정치후원금도 떳떳하게 얼마를 냈다고 밝히고, 그 후원금으로 해당 의원은 어떤 입법활동을 했는지 공개하다 보면 이런 사태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상봉 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착잡한 마음뿐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이 총리는 계속된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총리의 불법 선거자금 수수가 밝혀진 것이 아닌 '의혹'에 머무른 상황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으니 물러나야 한다는 대응방식이 적절한가.

▲김민전 교수=아직 '의혹'인 만큼 법적 책임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적 책임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특히 이 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이 사태가 터진 거라 더 여파가 큰 것 같다. 물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기간 등과 같은 상황적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이 총리가 이번 사태에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적어도 '의혹'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나기 전까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홍 교수=정치인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이 총리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민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 총리에 대한 결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야권의 대응방식 또한 문제가 있다. 현재 박 대통령이 부재 중인 상황에서 이 총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꺼내든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특히 오는 29일 있을 재·보선을 의식해서 한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정치적 이슈를 선거에 이용하는 한국의 수준 낮은 정치를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총리에 대한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어차피 박 대통령이 돌아오면 이 총리의 향후 행보는 정해질 것이 아닌가.

▲김정호 교수=아무리 큰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라도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얼굴을 가려준다. 공직자도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의혹만 제기됐을 뿐인데 이 의혹만으로 해임을 건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법치국가인지를 의심케 한다. 이 총리 거취 문제는 총리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박 대통령이 당연히 해임을 할 것이다. 그때 해임해도 늦지 않은데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몰아붙여 해임을 강요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수사대상을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 8명에서 정치권 전체로 확대해야 하는지, 또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어느 시점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검찰 수사의 적정 범위는 어디까지로 생각하나.

▲홍 교수=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2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빌렸다. 물론 성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빌린 돈을 주로 금융기관 채무 상환에 사용했다"고 했지만 성 전 회장의 금융채무 이자까지 고려해도 계열사로부터 빌린 자금의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리스트에 거론된 8명에만 수사를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의원들은 물론 성 전 회장이 얼마나 배임.횡령을 했는지까지도 수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

▲김정호 교수=이번 사태로 한국 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음습한 면이 드러난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업종을 담당한 기업도 모두 구조조정이 될 판이다. 조선업은 세계 최고였는데 STX 등이 부도를 맞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을 막고 어떻게든 기업을 살리기 위해 이런 돈을 줬던 것 같다. 이번 수사를 통해 이런 과정을 완벽히 차단해야 한다고 본다. 특정 개인의 특혜로 기업을 살리기보다는 살릴 가치가 있을 만한, 미래 전망이 밝은 기업 위주로 살려야 한다. 이런 기업들을 살려야 은행 부실화를 막을 수 있다. 이를 차단하지 못하면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떤 용도로 정치자금이나 은행자금이 들어갔고, 어떻게 경남기업이 회생했는지 등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김민전 교수=특검이 필요하다. 현재 나온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은 공소시효가 다 지나 처벌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면 정치적 공방으로 남을 수 있다. 특검을 통해 어떤 로비를 했는지 등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제도적 처방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온 나라가 정쟁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경제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우 살린 경기회복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현 경제 상황을 진단한다면.

▲오 전 연구원장=세월호 사고 이후 민간소득이 줄었던 것이 작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유가가 내려가면서 소비심리를 부추긴 효과와 함께 주택시장이 움직이면서부터다. 우리나라는 건설업이 움직이면 고용 등 경제지표가 같이 좋아진다. 하지만 내수와 수출을 나눠보면 내수 설비투자가 미약하게나마 좋아지고 있지만 하반기엔 다시 줄어들 것 같다. 수출은 한마디로 힘들다. 지난 1~3월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1·4분기에 이런 현상은 처음이다. 우리 경제는 내수가 불황이라도 수출이 버텨주면서 유지되는 구조였는데 수출마저 불안해지면 전반적 경제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인상, 일본 (추가 양적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 유로화 약세, 중국 경기둔화 등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성완종 스캔들이 터지니 사람들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일이 걱정이다. 정부가 나서서 잘 다독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확실히 나눠 '투트랙' 대응을 해야 한다. 정치에 경제가 계속 휩쓸려 간다면 몇 년 뒤 엄청난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fn ‘성완종 파문’ 4대 제언] (5·끝) 전화위복의 기회로

▲김정호 교수=오 전 연구원장의 말에 대부분 동의하면서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 경제 문제를 더 말하고 싶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건설업이 세계 일류가 될 만큼 분발해 전체 소득 수준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 거칠게 말하면 나머지 산업은 제조업, 건설업에 얹혀간 것이다. 유통, 관광, 금융, 농업 등은 아직 후진국 혹은 중진국 수준이다. 그런데 선진국 수준인 제조업과 건설업도 낮은데 달려 있는 '쉬운 열매(low-hanging fruit)'를 따 먹는 단계가 지나면서 '높은 곳에 달린 과일(high-hanging fruit)'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즉 산업의 수준이 한 차원 높게 넘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게 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경제성장이 멈춘다. 낙후된 산업을 혁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 관광,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4분의 3에 이른다. 서비스업을 기업화해야 하는데 이게 경제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에 막혀 있다. 성장률 하락 상황을 돌파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홍 교수=문제는 정치가 이런 경제법안들을 빨리 처리해야 구조개혁을 이룰 수 있는데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언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나 일정도 없다. 국회는 내년 총선에만 전력을 다하느라 경제 현안을 챙기지 않을 게 뻔하다. 그래서 역시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정치적 문제를 이슈화해서 선거에서 한 석 더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틀렸다.

▲김민전 교수=제 관점은 조금 다르다. 현 상황의 궁극적 원인 제공자는 박근혜정부다. 말만 했지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국민이 체감하는 것은 거의 없다. 좁은 인력풀 때문에 인사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박근혜정부가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그런 조치는 정치 문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현 정권의 정책역량이 중요해졌다.

―'성완종 사태'가 오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을 위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오 전 연구원장=이번 사건이 경기회복의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고 하는데 성완종 사태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우리 경제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소비나 투자 심리를 다독이는 등의 대응을 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도 새로운 미래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특히 길게 보면 수출이 점점 불안한데 1990년대 정보기술(IT)산업처럼 신기술 사업분야를 개척해야 기업의 투자가 따라갈 것이다.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경쟁력 강화, 기술이나 교육 인력 양성을 통해 기능 수준을 끊임없이 향상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 문제가 경제에 영향을 미쳐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볼 때 분명 '투트랙'으로 가야 하고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느냐가 정치권의 역량이자 리더십이라고 본다.

▲김정호 교수=경제민주화가 논제로 떠오르면서 자영업자들이 현 상태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 큰 문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동부, 웅진 등 부도를 맞은 기업이 많은데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위기의식을 느끼지만 직급이 내려갈수록 그런 위기를 감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직원들에겐 경고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도 단순히 인력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구조적 관점에서 '워닝 시그널(경고 표시)'을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데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나라 전체가 '지금처럼 그냥 살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처럼 살 테니까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인데,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을 막는 사회적 분위기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본다. 당장 그래서 정치권이 선택할 방안은 '결단'이다. 여러 사례를 통해 경험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선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협하게 되면 그건 굴복으로 받아들여져서 타협을 이룬 대표를 구성원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진정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면 나서서 돌파하고 밀어붙인 다음 결과를 가지고 심판받아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합의하자는 것은 결국 하지 말자는 소리와 같다.

▲김민전 교수=만약 외환위기 사태를 다시 맞는다면 우리 국민이 그때처럼 금을 모아줄까.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의식이 많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국민은 반드시 우리 기업의 제품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안한다. 이런 풍조는 결과적으로 보면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 것인데, 그 원인은 성장의 과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이 잘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풍조가 팽배하다. 일례로 현대차에 대한 반감이 외제차보다 더 크지 않나. 그런 것을 보면 기업도 경각심을 가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무너진 공동체를 복원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도약도 쉽지 않다.

▲홍 교수=우리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 시민정신을 확립해야 한다. 기업이든 근로자든 간에 시민정신에 적합하게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완종 사태도 관례적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정치자금을 건네던 것들이 문제가 돼서 터진 것 아닌가. 경제적 측면의 개혁도 '함께 사는 사회'란 공동체 의식 없이 타협은 없다. 지금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처리시한을 둔 건 잘했다고 본다. 5월 6일엔 무조건 끝내도록 돼있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로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기한을 정하고 논의하라는 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합의를 촉구하되, 장기적으로 더욱 큰 틀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이 돼 대한민국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보고 싶다. 이 사태를 만든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제언해 달라.

▲홍 교수=검찰 수사를 마치고 나면 야당에선 반드시 "못 믿겠다" "수용 못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살아있는 정권을 제대로 수사하겠느냐는 논리와 함께, 다시 또 특검으로 가자고 할 텐데 저는 처음부터 특검을 주장했다. 상설특검법을 만들어 놓고 그걸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건 굉장한 사회적 비용의 손실 아닌가. 야권으로선 정치공학적으로 맞는 전략이지만 이런 이해득실 계산이 너무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래서 경제 '골든타임'이 다 지나가는 판에도 손 놓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 이 '부패정권' 프레임을 끌고 가려 할 것이다. 득표전략으로는 바람직할지 몰라도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야권의 행태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국민뿐이다.

▲김민전 교수=정치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길게 끈다고 전화위복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제대로 된 정치개혁의 발판이 되려면 대선자금 제도를 고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현재는 대선자금의 주체가 정당으로 돼 있어서 후보가 직접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그래서 정당이 불법으로 자금을 받아 쓰면 정당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도 과오가 갈음된다. 미국처럼 대선자금후원회를 후보가 명확하게 책임져서 모금과 지출을 후보 중심으로 해야 바람직하다. 그럼 후보 차원의 문제로 당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가 현실적으로 적정한 자금이냐는 데는 논란이 있겠지만 총액규제 여부부터 시작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면 되지 않겠나. 현재 120만원 이상 고액기부자 신원을 공개하게 돼 있는데 정치자금을 받아 쓰는 쪽도 어디에 어떻게 지출하는지 명확히 공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유권자에게 이런 자금 운용과정을 다 열어주면 차제에 대선자금 투명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호 교수=미시적이지만 이번 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는 분야가 금융이다. 금융이 매개고리가 돼 성 전 회장이 정치권의 힘을 빌려 은행자금을 쓰면서 망해가는 회사를 연명케 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사실상 국영은행이고, 금융감독원 (관리)하에서 꼼짝을 못하니까 정치권의 입김이 더 세지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엔 민영은행이 없다고 봐도 된다. 정치권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업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연을 대려는 유혹에 계속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은행에 대해 자율권을 줄 때가 됐다. 자율권을 안 주는 이유로 '은행은 비 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논리를 대는데 은행은 원래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스스로 비가 안 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못 갚을 만한 기업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한 자본의 논리다. 금융이 정치권과 떨어져서 독자적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가도록 해야 정치권의 부패도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렇게 큰 정치스캔들이 발발하더라도 경제는 경제대로 갈 길을 가는 자세다.

정리=jyyoun@fnnews.com 윤지영 정상희 기자

■노동일 경희대학교 교수 약력 △법무부 반부패세계대회조직위원회 위원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논설위원, 편집위원 △경희대 법과대학 부교수

■김민전 경희대학교 교수 약력△한국정당학회 부회장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이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 △국회입법조사처 자문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김정호 연세대학교 교수 약력 △제3대 자유기업원 원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포퓰리즘입법감시단 공동대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오상봉 前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약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추진위원회 위원 △16·17대 산업연구원 원장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홍성걸 국민대 교수(국회윤리심사자문위원) 약력 △美 노스캐롤라이나대 풀브라이트 객원교수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연구부회장 △제3기 국회윤리심사자문위원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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