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을 거듭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문제로 '법안 연계처리' 혹은 '패키지딜'로 일관하는 정치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정 법안의 취지에 입각해 여야가 심도깊은 논의를 해야 하지만 성격이 다른 법안들을 한데 묶어 여야가 주고받는 식의 딜을 하는 관행이 입법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지적이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법 개혁안 본회의 상정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과 반드시 함께 처리돼야 한다며 새누리당을 압박하면서 연계처리 관행이 비난 받았다. 야당은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의식, 이 같은 요구는 여야 원내대표간 협상에서 이미 합의된 내용이라며 '연계'가 아니라 상호 신뢰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 다만, 야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과정에서 갑자기 문형표 복지부 장관 카드를 연계시키고 이전에도 법안 연계를 협상의 볼모로 삼은 전례가 있어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아울러 대여강경 노선을 택하면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이미지가 민생을 지키는 경제정당.대안정당을 표방하겠다는 당의 전략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여야는 이날 5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 일정을 확정하기 위해 지난한 협상을 계속했다.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 요구를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규정했다. 여당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가 원내대표 선에서 확정지을 수 없는 문제인데다가 공무원연금과 직접 관련도 없다며 이미 합의된 내용까지라도 처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야당이 '조건부' 협상 카드를 꺼낸 것은 야당 주장대로 지난 합의를 지키는 차원이라고 해도 결론적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에 다른 사안을 연계해 처리를 지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야당은 지난 2월 말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본격 시작한 이후 중요한 국면마다 본안과 관련 없는 사안을 들고 나오는 협상 전략을 써 왔다. 지난 3월 말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활동 시한을 종료하자 야당은 실무기구를 구성을 돌발 제안한 바 있다. 이어 지난 6일 본회의 무산 책임을 이유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을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 문제와 연계시켰다.
지난 2월에는 일명 '광주법'으로 비화됐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아문법) 처리를 위해 "아문법 상정 없이는 다른 모든 법안 처리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서 결국 통과시킨 예도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시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와 긴밀하게 협의해 통큰 양보로 거의 합의에 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경제활성화법 등을 발목 잡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일괄타결' '패키지 딜'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관련 없는 사안까지 묶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지적하며 "문제는 관계 없는 사안을 연계시키면 공무원연금법의 원래 취지까지도 변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오래된 우리 국회의 병폐라고 본다"며 "문형표 장관 사퇴, 세월호 시행령은 연계에 합리성이 떨어지는데도 협상의 볼모로 삼는 식이 계속된다면 국회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반면, 협상의 파트너인 여당도 관철시키기 위한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연계 혹은 패키지딜을 활용하고 있어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다수당인 새누리당과 정부가 야당과 합의했던 일정과 합의 수준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선 탓에 이같은 야당에 연계처리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박상철 교수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야당 입장에선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여야 간 타협을 많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교수는 "세월호법에 대해 독자적인 논의를 할 기회를 놓친 야당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의 가치에 비춰볼 때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