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바마 정부가 '제조업 부활'을 핵심 정책목표로 내건 후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해 혁신을 이루기 위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활황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에서 성과가 입증되고 있다. 기존의 대량 생산-판매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의 제조업을 새로운 사업모델을 가진 혁신산업으로 변신시켜 미래산업을 주도해 가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미국 백악관에서 사물인터넷(IoT) 부문 대통령 혁신연구위원(Presidential Innovation Fellow)을 지낸 이석우 미 국립표준기술원(NIST) IoT 및 스마트시티 담당(사이버물리시스템·Cyber-Physical System) 부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미래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IoT는 이 부국장이 추진하는 사이버물리시스템의 일부다. 사이버물리시스템이란 디지털 기술과 현실 세계의 시스템을 연결하는 기술이다. 모든 디바이스나 시스템, 인체에 센서를 넣고 이 센서들이 서로 데이터 교신을 하며, 여기서 도출된 자료를 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부국장은 300명의 전문가가 지원해 2명이 선정된 대통령 혁신위원 중 한 사람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부원장이 이석우 부국장과 함께 현재 미국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IoT 산업 및 스마트시티 산업 전반에 대한 진행상황과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점, 한국 산업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제조업 혁신을 위해 IoT와 접목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IoT가 장차 제조업을 비롯한 기존 산업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보는가.
▲IoT는 분명히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보통 IoT의 가치사슬은 △하드웨어(센서, 액추에이터 등) △커뮤니케이션(연결성) △소프트웨어·정보분석, 서비스 등으로 나눠진다. 한국에서는 연결에 집중한다. 제조업이 바로 여기까지다. 그러나 상위 레벨인 서비스에 집중하도록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 상위 레벨로 갈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결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비즈니스에 IoT를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제품을 엮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엮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기업들이 중점을 둬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겠는가.
▲기업이 어느 쪽에 많이 투자를 해야 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현재는 연결성에 90을 투자하면 서비스에는 나머지 10을 투자한다. 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건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연결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왔고 솔루션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연결해 어떤 서비스를 만들 것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기존의 제조업 기술을 새로운 콘셉트의 비즈니스 모델로 바꾼 케이스다. GE는 제트 엔진을 생산해 항공사에 판매한다. GE는 엔진에 센서를 연결해 엔진의 성능, 부품 상태, 고장 유무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엔진 모니터링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엔진이 언제 망가질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 서비스의 핵심이다. IoT가 없으면 못했다. 그렇다면 이 모델을 다른 회사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기업들이 각자 자기의 사업모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GE에서 신규 사업모델의 기본 개념을 잡은 것은 기술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엔지니어와 협업을 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꾸 해보고 실패한 후 먼저 찾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사이버물리시스템을 통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려는 청사진은.
▲사이버물리시스템의 일부인 IoT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인 발전속도가 느리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아직까지 IoT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별로 없는데, 이는 연구개발(R&D)이 기술 위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동안 미국이 다른 산업에서 지켜왔던 리더십을 이 분야에서도 유지하기 위해 이 분야를 어떻게 진흥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 정부는 체계적인 전략을 만들지는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를 뽑아 산업이 잘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재난구조뿐 아니라 전력, 교통, 항공 관련 분야에 IoT를 접목하는 '스마트 아메리카 챌린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프로젝트의 추진상황은 어떠한가.
▲그동안 많은 R&D들이 있었지만 모두 파편화되고 융합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한꺼번에 모아 실생활에 와 닿을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자고 해서 생긴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네 가지 결과를 설정하고 이 중 하나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일자리 창출 △비즈니스 기회 창출 △눈에 띄는 경제기여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바로 그 결과다. 2013년 첫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100여개의 회사와 조직이 모여 24개팀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1년간 활동한 이후 성과를 담은 엑스포를 개최한다. 프로젝트는 1년 단위지만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계속 진행돼 얼마전에 끝난 2년차 프로그램(글로벌시티 팀스 챌린지)에서는 전 세계에서 50개 이상의 도시와 지자체를 포함한 250여개의 회사와 조직이 64개 팀으로 참여했다. 현재 3년차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여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새로운 팀 구성과 아이디어 도출을 도와주고 이 팀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정부 기관 및 기업, 학계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프로젝트의 성과는 어떤가. 잘된 예가 있다면.
▲보통 프로젝트의 3분의 1 정도는 상업화에 성공하고 굉장히 잘된다. 3분의 1은 중간 정도, 나머지는 주춤하는 정도다. 잘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자율자동차 프로젝트인 '아리보' 프로젝트다. 전쟁터에서 무인자동차가 알아서 부상병을 데려오는 프로젝트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확산되고 있다. 내년까지 13개 도시에 시스템이 구축될 계획이다. 스케일이란 프로젝트는 근력이 없어 바닥에 쓰러져도 일어나지 못해 죽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지자체와 IBM, MIT 등 산·학·연 협력이 이뤄졌다. 지자체가 이 사업의 수요자이며 기업과 연구소 등이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센서의 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빌딩이 무너졌을 때 로봇을 투입해 구조활동을 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초기 소방서에서는 로봇을 조종해본 사람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지만 퇴역군인 등을 소방서에서 영입하기 시작해 일자리 창출을 하는 등의 선순환도 이뤄졌다. 잘된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수요자와 먼저 파트너십을 하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자체 등의 수요자를 확보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비즈니스 실용성 면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로봇이 소방관 대신 화재진압을 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겠는가. 결국 정보기술(IT) 발전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지적의 한 예로 보이는데.
▲일부 일자리는 분명히 없어진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율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단기적으로 트럭 운전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마존에서 드론엔지니어를 고용하기 시작한 것처럼 없던 직업이 새로 생기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란 직업도 과거에는 없던 직업이다. 앞으로 창출될 일자리 중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한다.
―집에 센서를 달거나 감시하는 것이 인권 차원에서는 개인정보나 사생활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센서 정보를 도둑들이 입수한다면 큰 문제도 될 것 같은데 IoT 발전과 더불어 향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보안이나 프라이버시 이슈는 굉장히 큰 분야다. IoT 발전과 더불어 이 문제들도 균형을 맞춰 발전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 디자인을 할 때부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해야 한다. PC의 보안과 IoT의 보안은 또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센서 정보가 유출됐다고 가정했을 때 이 정보가 어떻게 이용될지를 예측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해지는 것이다. IoT의 보안 문제는 전통적인 보안 문제보다 더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초기단계부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IoT에 대한 글로벌 추진상황은 어떤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최근 더딘 표준화와 실행력 부족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관련 정책을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기본적으로 IoT는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과 유럽이 연동되지 않으면 파편화가 진행된다. 국가별로 공유하고 공동으로 진행할 것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경우 미국과 접근법이 다르다. 유럽은 관련 예산을 짜서 3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체계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그래서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유럽이 많이 앞서있긴 하지만 문제는 펀딩이 끝나고 나서다. 펀딩이 끝나고 나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모든 것이 펀딩 위주에서 나와서 지원이 없으면 안한다. 지속가능한 모델이 나와야 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실행력 측면에서는 앞선다. IoT는 아직 정확한 콘셉트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실용적이면서도 유연하게 대응해 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본다.
―IoT가 우리 생활에서 가시화되는 시점은 언제가 될까.
▲IoT로 돈을 버는 기업들은 벌써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지 않다. IoT의 성패는 결국 소비자들이 '사고 싶은' 서비스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은 서비스를 찾고 있는 단계다. 앞으로 최소한 5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기간에 많은 사람이 노력을 해야 비로소 IoT가 실생활에 가시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정책에 대한 조언, 미국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 있겠는가.
▲한국의 R&D 지원을 보면 집중하는 힘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한 부처나 국에서 담당하는데 이렇게 되면 선택과 집중이 잘 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다양성 면에서는 약점이 될 수가 있다. 세상은 점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이를 포용하고 밀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은 R&D 지원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만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촉매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대신 기업들의 R&D가 활성화돼 있다. 일부 정부가 기업에 펀딩을 주더라도 매우 제한적이다. 자생적으로 성장하라는 뜻이다.
―정부 R&D 지원은 촉매제로서 기초적인 역할에 방점을 두고 좀 더 많은 건 민간 쪽에서 상업화해야 한다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민관의 협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미국 전체의 문화적인 면에서 R&D나 상업화의 콘셉트 자체가 다르다. 모든 R&D의 기준이 실생활에 얼마나 와닿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즈니스와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생태계 자체가 대학과 연결한 비즈니스가 많이 나온다. 대학 자체가 비즈니스의 요람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대학들이 MIT나 스탠퍼드가 아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학이 있고 다른 역할을 해야 하는 대학도 있다. 민관 협업이 중요한데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정부는 장을 제공하고 촉매제가 필요하면 그것을 주는 것이 역할이다. 미국에서 어떤 형식으로 장을 만들어 주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참고해 한국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가 산업발전을 위해 지원해주는 건 어떤 것이 있는가.
▲미국 정부는 기업에 R&D 지원을 하는 것이 흔치 않다. 소위 미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미국 정부 스스로 "연필과 전화가 우리의 무기"라고 말하곤 한다. 돈을 주는 기관이 아니고 문제점이 생겼을 때 전화와 글로 도와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IoT와 관련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백악관 전문가에게 가서 이야기하면 그는 관련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 토론하고 연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 직접적인 지원프로그램은 없고 배울 수 있게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리=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이석우 부국장 약력 △45세 △서울대 기계공학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 석.박사 △밀레니얼 넷 공동창업 △밀레니얼 넷 최고기술책임자(CTO) △백악관 사물인터넷(IoT)부문 혁신연구위원 △미국 상무부 국립표준기술원(NIST) IoT.스마트시티 담당 부국장
■배상근 부원장 약력 △49세 △연세대 문학사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산업연구원(KIET) 산업계량분석실 연구위원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연구위원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한국경제연구원·전국경제인연합회 부원장·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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