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의 공세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직접 나서 이번 합병을 사익(私益)이 아닌 국익(國益)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일부 국내 소액주주운동 그룹이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국민 여론을 호도하면서 엘리엇의 먹튀에 손을 들어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엘리엇, 대표적 '국제 알박기 펀드'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엘리엇의 투자행태를 '알박기 행위'로 단정했다. 해당 기업이나 나라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것은 물론 일반인들이 상상치 못할 정도로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해 수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실제 엘리엇은 1990년대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위기를 적극 활용, 페루로부터는 수천만달러,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는 수십억달러를 갈취했다.
신 교수는 "아프리카에서는 엘리엇뿐만 아니라 다른 펀드들까지 달려들어서 국제기구나 선진국들이 기아(飢餓)나 용수(用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조해주는 돈마저도 채무 갚는데 먼저 써야 한다며 지급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실제 콩고에서는 엘리엣이 2000만 달러에 산 부실채권으로 9000만 달러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성향의 정승일 사민저널 기획위원장도 "이번 합병에 대한 판단은 이 나라의 주인인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면서 "주권자인 보통사람들이 나서도 모자라는 판에, 지금 한갓 파렴치한 날강도에 불과한 투기적인 헤지펀드가 불현듯 나타나 '정의의 사도', '법치의 사도'인양 행세하는 엉뚱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엇, 포퓰리즘 적극 동원
엘리엇은 이번 삼성과의 분쟁에서 포퓰리즘을 동원하고 있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엘리엇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가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이해관계도 없는 주체인데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주식을 확보해 놓으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를 갖고 투자한 '사건 반응형(event-driven) 금융투자자"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발표되자 다른 행동주의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소액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전면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같은 엘리엇의 행태에 대해 일부 세력이 동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투기자본 엘리엇이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일부 국내 소액주주운동 그룹도 동조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투기자본들은 언제나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서 "명분은 대주주의 전횡에 대한 소액주주의 이익보호를 내세운다"면서 "그러나 종국엔 막대한 이익을 챙겨 떠났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반기업 정책 손봐야
이처럼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뒤흔들고 있는 배경에는 지나친 반기업 정서와 이상향적인 기업관, 이상주의적 경제민주화 논리가 결합됐다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정거래법을 시행하고 있고 경영권 승계에 가장 비우호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라며 "상법을 통해 1주1의결권 원칙을 가장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나라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즉, 기업을 옥죄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기업의 약점을 이용해 한 건 올리려는 단기 재무적 투자자에 대해서 다양한 대안이 기업에 허용됨으로써 합병을 통한 효율성 제고와 주주가치 제고 간 조화가 도모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역시 "기업도 한국 법률이 인정한 한국 국민인 만큼 똑같이 보호해야 한다"면서 "한국 기업이 독수리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한국의 허술한 법률과 법집행, 그리고 국가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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