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에서 개인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 논의가 좀체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때 인터넷 업계와 누리꾼, 언론계를 뜨겁게 달궜던 주제가 헛바퀴만 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논란의 진원지인 유럽에서는 이미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기존 법에서 인터넷상 개인 정보가 임시 삭제되는 등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업계에 미칠 부담도 크다는 반대 목소리가 제기된 탓이다.
특히 국회에선 잊혀질 권리 관련 법안도 발의했지만 관련 부처에선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잊혀질 권리'는 법제화 보다 '가이드라인' 마련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 주도로 '잊혀질 권리' 법제화 논의가 방통위 내 '연구반'에서 진행중이나 참석 인원의 절반 정도가 법제화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실무진을 비롯한 학계, 업계 등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시작된 '연구반'은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한차례 정도 열려 잊혀질 권리 법제화에 대해 논의를 진행중인데 좀체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연구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토론자들 중에서 반대 의견이 상당해 방통위 입장에서도 현재로선 바로 법제화 단계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기존 법률로도 '잊혀질 권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향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연구반에서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방통위에서도 현행법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이드라인화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입법적 공백이 있다면 추가적인 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방통위 관계자도 "기본적으로 합의가 우선돼야 관련 법안이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어 의견 수렴을 충분히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해 상황이 쉽지 않음을 전했다.
지난해 6월 중순부터 개인정보보호 컨퍼런스를 통해 '잊혀질 권리' 논의 본격화를 선언했던 방통위는 올해 들어 지난 5월 관련 세미나를 열어 '잊혀질 권리' 공론화에 나선 바 있다.
국회에서도 법안은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지난 2013년 2월 자신이 작성한 글 등 저작물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현재까지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이노근 의원실 관계자는 "상임위에서도 여야 쟁점 사안이 없는 법안이고 시민단체도 지원하는 법이지만 정작 미래창조과학부나 방통위는 추진 의지가 없다"며 "미래부는 원론적인 답변만 계속하고 있고 방통위에선 논의하고 시작했다고만 할 뿐 이후 상황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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