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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먹잇감' 국내 대기업 방패 생기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1 17:30

수정 2015.07.21 18:21

법무부, 경영권 방어 위한 상법 개정 검토
국내 기업, M&A 빗장 풀렸지만 방어수단 없어… 벌처펀드, 2000년 이후 25건 공격 시도

'쉬운 먹잇감' 국내 대기업 방패 생기나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삼성·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 지분에 대한 표적사냥에 나설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정부가 이를 방어할 수단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먼저 재계가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주식 제도 등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구상 중이다. 이에 따라 상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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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당하던 국내 대기업, '방패' 생길까

21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법무부 등이 경영권 방어 제도와 관련한 상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최근 삼성물산과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태로 인해 국내 기업이 외국계 벌처펀드 등에 대항할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최근 행동주의 헤지펀드 등 국제 투기자본이 호시탐탐 국내 대기업을 노리고 있지만 그동안 국내 기업은 무방비로 노출돼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우려가 컸다.

2000년 이후 한국에 들어온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지분매입 횟수는 총 25건에 달한다. 미국.일본.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째로 잦다. 그간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됐지만 재벌의 부적절한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투기자본이 주식을 매집하고 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저렴한 신주를 매수해 그만큼 투기자본의 영향력을 희석시키는 방법이다. 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 등 선진 자본시장에는 이미 일반화된 제도다. 미국은 1982년, 가까운 일본도 신주예약권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에 도입해 시행한 지 10년이 넘었다.

또 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거론되는 차등의결권주식 제도는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너나 특정 우호주주에게 한 주당 의결권을 복수로 주는 방식이다.

차등의결권의 변형된 방식으로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더 주는 '태뉴어보팅(tenure voting)'도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상법 개정·회사 정관 변경 '넘어야 할 산'

업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영권 방어 제도 검토를 원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이재혁 정책연구실 과장은 "한국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인수합병과 관련한 빗장은 다 풀고 정작 방어 수단은 없어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며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사주 매입밖에 없었는데 이번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주식 제도 등이 도입되려면 먼저 국회에서 상법 개정 논의를 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 제도는 상법 개정사항이어서 금융당국이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국회에서 상법 개정이 논의되거나 의원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 법안은 현재 정치권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재계는 SK와 소버린 간 분쟁, 칼 아이칸의 KT&G 지분 매입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주,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법제화할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철저히 외면 받았다.

2010년 법무부가 포이즌필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사장된 바 있다. 이후 국회에선 오히려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제한하는 법들이 줄줄이 발의되고 있다.

경영권 방어와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법무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지만 대부분 관계자들이 교체돼 다시 내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지적이다.

또 관련법이 국회 문턱을 넘는다고 가정해도 상장사별 정관 변경은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법이 개정돼도 상장사별 주주총회를 거쳐 정관을 변경해야만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이 적용될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선 전체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33.3%) 이상이 참석하고, 주총에 참석한 주식 총수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50%가량 우호지분을 확보해야 정관 변경이 원활하다는 얘기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포이즌 필은 특정 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측이 대상회사 이사회의 의사에 반해 일정지분 이상 주식을 취득할 경우 인수자 이외의 주주에게 미리 정한 낮은 가격으로 주식 등을 취득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주당 의결권이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주식을 발행하는 것으로 회사 정책에 따라서 1주의 가치가 1주 미만이 되거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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