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화백(1919~2014)의 그림엔 추상과 구상이 공존한다. 여성의 누드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1986년작 '쌍'에도 화면 오른쪽엔 구상이, 왼쪽엔 추상이 병치돼 있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분할된 화면 위에 표현된 여성의 누드는 환희와 절정, 허무와 끝없는 욕망 같은 감정의 내면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6월 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하모니즘의 창시자' 김흥수 화백 1주기전이 서울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김 화백의 1970~1990년대 작품과 2000년대 이후 작업한 드로잉 등 모두 70여점의 작품이 나왔다.
지난 1977년 그가 미국 펜실베니아대 미대 초빙교수 시절 직접 작성해 발표한 '하모니즘 선언'은 국내 화단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 안에 담는 하모니즘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철학에서 출발한다. 서로 상반되는 극과 극이 하나의 세계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전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의 영역을 넘은 오묘한 조형의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피카소'로도 불렸던 김 화백은 '누드의 대가'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의 상당수도 여체가 자아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작업한 것이 많다. "여성을 통해 들여다본 환희와 절망이 나의 예술에 들어있는 세계"라고 고백하기도 했던 그는 팔순을 넘긴 2000년대에도 간결하고 명쾌한 선으로 인체 소묘를 즐겼다.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소야곡이 흐르는 밤'(1999년), 종이에 파스텔로 작업한 '누드'(2005년)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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