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CT 규제 갇힌 사이 中 업체들 무섭게 성장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급부상하면서 국내 기업이 이들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 정보기술(IT) 인프라나 금융서비스 부분에서 뒤처져 있던 중국이 이른바 '퀀텀점프(대약진)'를 통해 한국은 물론 미국.유럽시장까지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
우리나라가 각종 규제와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인터넷전문은행이나 간편결제서비스 등 핀테크(Fintech.금융+IT)와 온라인.오프라인 연계(O2O) 산업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2~3년 앞서 새로운 서비스를 생활에 정착시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결국 우리가 첨단기술을 전수해주던 중국은 이미 옛말이 됐다. 이제 첨단 서비스산업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서 한 수 배워 오는 시대가 된 셈이다.
■다음카카오, 한국판 '위뱅크'
11일 주요 외신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다음카카오가 한국투자금융지주사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중국 텐센트의 '위뱅크(WeBank)'와 유사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초부터 다음카카오의 모바일뱅크 태스크포스팀(TFT)을 이끄는 윤호영 부사장도 최근 "미국과 일본보다는 중국의 인터넷은행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텐센트가 지난 5월부터 운영 중인 인터넷은행 '위뱅크'는 PC.모바일 메신저(위챗)를 통해 사용자의 금융거래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뒤 신용위험도를 측정해 대출을 진행하고 있다. 주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단기자금 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현재 컨소시엄이 구성 중이고 인가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업모델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은행법 개정을 전제로 ICT 기반의 인터넷은행을 만든다는 점에서 텐센트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최근 선보인 간편결제서비스인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도 이미 중국 ICT 업체가 10년 전에 출시한 '알리페이' '텐페이' 등과 유사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즉, 국내 대형 인터넷업체들이 새롭게 선보인 각종 서비스가 10년 전 중국의 서비스들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알리바바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해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동안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던 상황"이라며 "지금이라도 이들의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규제개선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2O 서비스 중국에선 과거형"
배달음식 주문 O2O 업체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이 최근 시작한 '배민수산(회 배달)'과 별도의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이 운영 중인 '배민라이더스(유명식당 음식배달)'도 중국 상하이의 유사한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한 스타트업(창업초기기기업) 보육기관 관계자는 "중국에 국내 핀테크나 O2O 분야 스타트업들을 진출시키기 위해 현지인들을 만나 보니 이미 3~4년 전에 중국을 쓸고 지나간 아이템이라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더라"며 "과거 텐센트가 카카오톡을 따라 만든 위챗이 지금은 훨씬 더 진화된 형태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다음카카오가 최근 선보인 택시 호출(카카오택시)을 비롯해 신용카드 결제, 뉴스 검색 등은 이미 위챗 앱 하나에서 이뤄지고 있다. 게다가 위챗 사용자의 20% 이상은 모바일 지불결제만을 위해 위챗을 이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규제에 갇힌 핀테크
ICT 강국을 자부해온 우리나라가 어느새 중국을 따라가야 하는 현실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와 부처 간 칸막이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중국은 규제 시스템이 미국과 비슷하다며 중앙정부가 큰 그림은 그리지만 땅이 넓어 지방정부가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부분이 많다"며 "반면 우리 정부는 시중은행과 통신사 등 기득권 입장에 서서 제도를 운영하는 경향이 많다"고 꼬집었다.
또 중국은 상대적으로 IT 인프라가 좋지 않은 까닭에 인터넷 환경을 보다 편리하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도 "신용카드 보급 등 금융서비스가 발달되지 않은 탓에 이를 뛰어넘는 형태로 간편결제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며 "현지 식당에 가보면 수수료가 높은 신용카드를 쓰는 대신 알리페이 등을 쓰는 곳이 더 많다"고 전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부처 간 칸막이 규제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관계 부처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부 한 관계자는 "배달 앱 관련 O2O 업체가 택배업 허가까지 받아야 하고, 국내를 방문한 외국인 상대 숙박 앱들도 관련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O2O를 글로벌 차원에서 거대한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규제 개선을 얘기하고 있지만 관계 부처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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