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노벨상을 향해 뛴다] (1부·⑫) "미쳐야 성공한다.. 젊은 과학자들 생계걱정 안하게 지원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8 17:51

수정 2015.08.19 10:27

1부. 과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12. 박승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

유명한 미술가 집안이던데..

박서보 화백이 큰아버지 미술보다 새로운 영역이 좋아 국내에선 화학생물학 첫 개척 이젠 경계없이 연구하는 시대
'서울 플로어' 기술이란?
빛을 받아서 다른 파장으로 빛 내는 형광물질에 착안 당뇨병·치매·파킨슨병 등 새로운 작용기전 물질 찾아내 신약개발에 적극 활용한국, 노벨상 받을 수 있을까
선진국만큼 양적팽창했지만 기술 선도하는데 익숙지 않아 새로운 분야 개척해야 가능성 안정만 찾는 후배들 안타까워 '똘끼' 있는 과학자가 일낼 것
과학정책 방향은 어떤가
과학계에서 역량 있던 분도 기관장 맡으면 변화 쉽지 않아 단기 성과 위주 정책이 문제 긴 안목으로 연구 지원해야

박승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화학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려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을수록 노벨상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웃음을 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박승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화학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려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을수록 노벨상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웃음을 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우리나라 과학지원 정책은 예측가능하고, 성과지향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전에 없던 걸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과는 거리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새로운 분야를 쫓는 잠재력있는 연구인력의 저변화가 노벨상의 열쇠라고 봅니다." 최근 만난 박승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45)는 우리나라가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미개척 영역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될수록 수상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작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의 주인공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과학계에서 생소한 분야였던 화학생물학을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연구한 인물이다. 그의 연구팀이 개발한 '서울 플로어(Seoul-Fluor)'를 비롯한 60여종의 새로운 형광 유기물질들은 현재 신약개발 등 바이오센서 산업에 획기적인 성과로 이어지며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과학계의 최근 기조인 융합과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미술계 집안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나 역시도 기존에 남이 가지 않은 화학생물학이라는 길을 갔기 때문에 지금의 성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과학자는 자신이 미칠만큼 좋아서 오래할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내 철학"이라고 말했다.

―미술계 집안이라는 배경에도 화학자의 길을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

▲아버지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를 역임하시는 등 집안 분들이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서양화의 대가인 박서보 화백이 큰 아버지기도 하다. 미술계는 이런 배경이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좀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찾다보니 자연과학에서 창조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 물질을 만드는 화학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화학 전공을 선택할 때는 큰 동기부여는 없었다. 그저 만만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나랑 잘 맞았다. 긍정적인 성격도 도움이 된 것 같다. 화학을 연구하면서도 물질을 만드는거 만족하지 못했다. 새로운 물질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학전공 도중에 바이오(생물학)쪽으로 가게 됐다. 지도교수 등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성공보다는 좋아하는 걸 하자는 욕구가 컸다. 내가 20년전 공부하던 당시에는 '화학생물'학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하버드대와 스탠포드대도 화학과가 화학생물학과로 바뀔 정도로 주류가 됐다. 이제는 화학의 미래 방향은 화학생물학으로 인식될 정도다.

―화학생물학의 기본 개념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기존의 학문 분야는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하는게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학문 사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특히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이해하고 조절하려는 게 화학생물학이다. 최근 화학생물학은 화학과 생명과학, 그리고 의약학의 실질적인 융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융합 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러한 학문 성격때문에 최근 화학생물학의 연구는 생명현상의 변화를 연구하는 센서 분야나 신약연구에 많이 집중돼 있다.

―'서울플로어'라는 유기 형광물질 개발로 큰 주목을 받았다. 어떤 기술인지 소개해 달라.

▲방향족 화합물인 인돌리진(Indolizine)이라는 유기분자를 활용해 탄생한 게 서울플로어다. 서울플로어는 하나의 중심 골격으로 가시광선 전 영역의 빛을 낼 수 있는 독창적인 형광물질이다. 특히,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형광의 밝기나 빛의 파장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센서 시스템으로 개발하는데 최적의 물질이다. 쉽게 말하자면, 형광물질은 빛을 받아서 다른 파장의 빛을 내는 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전기를 받아서 빛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불을 끄면 형광물질만 보인다. 전체가 밝을때보다 시인성이 뛰어나다. 여기서 착안해서 만든 형광물질이 서울플로어다. 당장 신약개발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서울플로어를 이용해 세포 내에 있는 지방방울을 선택적으로 염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러한 세포의 표현형 변화를 통해서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방법을 '표현형 기반 신약개발'이라고 하는데 서울플로어는 여기에 최적화된 스크리닝 시스템이다. 이렇게 개발된 스크리닝 방법을 통해서 다양한 질환을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퇴행성 뇌질환(치매, 파킨슨씨병, 루게릭병), 폐혈증과 같은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작용기전의 물질을 찾아냈고, 이를 활용한 신약개발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화학생물학이 지금처럼 과학계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가.

▲화학생물학 박사 학위는 국내에서 거의 초기에 받은 것 같다. 후배들이 나한테 선견지명이 좋다고 하는데 솔직히 전혀 예상못했다. 그때는 그저 좋아서 시작했다. 설사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반대로 전망만 보고 마음에도 없는 길을 도전했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좋아하는 걸 오래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고 믿는다. 20년간 화학을 연구하다보니 이제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게 됐더라. 운도 좋았던 게 사실이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1부·⑫) "미쳐야 성공한다.. 젊은 과학자들 생계걱정 안하게 지원하라"

―노벨상에 대한 견해와 우리나라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먼저, 우리나라 과학연구 환경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 연구환경은 미국 등 선진국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양손묶고 권투를 했다면 지금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저변은 아직도 약하다. 화학 분야만 보더라도 국내에서 몇 명빼고는 대표할 만한 연구인력이 없다. 정부나 지원기관에서는 결과가 잘 나올만한 곳에 지원을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 아무래도 성과 예측이 쉬우니까. 그런데, 이런 과학자들은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다. 노벨상은 전에 없던 걸 개발하는 거지 지금처럼 있는 걸 발전시키는 건 수상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새로운 분야에서 잠재력있는 연구인력을 많이 육성하는 게 노벨상의 지름길이라고 본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단은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학자들이 생계 걱정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연구의지가 큰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고, 그래야 훗날 뜻밖의 성과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노벨상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이후도 두렵다. 금메달 따기 전까지 지원하다가 정작 성과를 얻으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것같은 불안감이 있다. 대체로 정책자들은 여러 요인상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과학은 연구하고 산업에 접목돼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나의 사회문화처럼 정착돼야 한다. 과학은 올림픽 경기가 아니다. 아울러, 노벨상은 한번 수상한 분야는 절대 다시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로 관심을 바꾸는 '무빙 타깃'식 접근방식은 다른 연구자의 뒤를 따라가기 십상이다. 여기저기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자연과학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자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지만 정부지원 조직의 틀도 변해야 한다. 평소 존경하고 과학계에서 역량이 큰 분이 정부연구지원기관의 수장이 되셨는데, 막상 조직에 들어가 변화를 이끄는 게 쉽지 않아 보이더라. 재임기간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도전보다는 성과 위주식 지원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과학은 정말 긴 안목으로 봐야하는데 말이다.

과학계에서 한국은 전대미문의 발전을 이뤘다. 20년 전만해도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정말 미미했다. 지금은 한국을 과학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선진국과 대등할 만큼 양적팽창은 충분히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업계를 선도하는데는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요즘 말하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나아가 '퍼스트 무버(시장 창조자)'의 길을 찾는데 집중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요즘 과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을 보면 실패를 너무 두려워한다. 고등학교때까지 실패없이 조심스러운 길을 걸어오다보니 그런 것 같다. 과학자는 실패 가능성이 있어도 가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우수한 제자들도 처음에는 바닥까지 떨어지도록 내버려둔다. 알다시피 서울대생들은 자기 스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게 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바닥까지 떨어져서 차근차근 짚고 올라와 문제해결 방식을 스스로 찾는게 과학자의 기본이다. 그래서 내 꿈은 좋은 과학자보다 좋은 멘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로 돌아온 이유도 사람을 키우고 싶어서다. 요즘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연구원에 들어가는 걸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게 답이 아니다. 연구원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꿈을 이루는데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찾는게 먼저다.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사람은 과학자와 맞지 않다.
'똘끼'가 있는 과학자가 돼야 한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약력 △연세대 화학과 △텍사스 A&M대 박사 △하버드대 연구원 △서울대 화학부 교수

■수상경력 △장세희 학술상 △젊은 과학자상 대통령상 △서울대 연구상 △미래부, 국가우수연구성과 100선 선정 △미래부 과학기술자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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