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어느 날, A씨(48)는 의료기기에 투자하라는 모 업체 직원의 말에 솔깃했다. 이 업체는 당시 전국에 10곳 이상 영업점을 갖고 있었고 A씨는 어렵게 모은 1억원을 큰 마음 먹고 투자했다.
이듬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A씨. 업체를 이끌던 조희팔이 그 해 10월 투자자 3만여명에게서 받은 3조5000억원 가량을 가로채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것이다.
A씨는 인천 주안동에 있던 조씨 회사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다른 피해자들의 울음 소리로 가득차 있을 뿐이었다. 희대의 다단계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의료기 역렌털 계약사건(조희팔 계약사기 사건)'이다.
조씨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의료기기 대여업을 가장한 피라미드 업체 20여곳을 차려놓고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피해자에게서 4조원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사기 행각이 드러난 후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 직전 중국으로 밀항, 조선족으로 신분을 위장한 뒤 중국 옌타이 인근에 숨어 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2년 5월 21일 '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같은 달 국내로 유골이 화장돼 이송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은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위장사망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조씨 유족이 국내 모 납골당에 안치한 유골과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추모용 뼛조각을 입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조사를 의뢰했지만 조사결과 감식 불가로 결론났다.
A씨는 조씨를 찾기 위해, 피해액을 돌려받기 위해 7년째 싸우고 있다. 피해액을 돌려받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돌아다닌 그는 이혼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사기 사건은 이미 7년 전 끝났지만 그로 인한 생채기는 컸다.
우선 조씨에게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간부까지 재판에 넘겨졌다.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부장검사급)는 조씨의 측근 등에게서 내사.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0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징역 7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2008년 조씨 사건 수사를 맡았던 총경급 경찰 간부는 9억원 수수 의혹으로 해임됐다.
같은 사기 사건 피해자들끼리도 상처받았다. 당초 피해자 피해회복을 위해 설립된 전국조희팔피해자채권단 대표진이 오히려 피해자들의 자산을 착복했기 때문이다.
대구지검은 조씨가 숨긴 재산을 확보한 뒤 사적으로 횡령한 전국조희팔피해자채권단 공동대표 곽모씨 등 채권단 핵심 관계자 7명을 포함, 10명을 구속기소하는 등 모두 12명을 재판에 넘겼다. 또 2010년과 2013년 2차례에 걸쳐 무혐의 처리된 조씨의 고철사업 투자 부분에 대해 재수사에 나섰다.
고철업자 현모씨는 조씨 은닉재산 690억원을 관리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총 710억원을 법원에 공탁한 상태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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