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③) 벤처투자 가 없다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16 17:10

수정 2015.09.16 17:11

(1) 창업 트라이앵글의 척박한 현주소 3. 왜곡된 출구시장
자금회수의 두 축, IPO와 M&A
국내에선 M&A 활성화 안돼 평균 12년 걸리는 IPO로 쏠려
인수합병시장 마비상태
기업 소유욕 강한 경영자들 지분 매각에 소극적 입장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③) 벤처투자 가 없다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③) 벤처투자 가 없다

지난 5월 국내 벤처업계를 술렁이게 만든 스타트업 매각 신화가 등장했다. 다음카카오가 모바일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스타트업 '김기사'를 625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이번 인수는 국내 벤체업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엑시트(투자금 회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를 만든 박종환 록앤올 대표의 매각 행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관이다. 고생 끝에 일군 자신의 기업을 625억원이라는 거액과 맞바꿨다는 식의 비난성 시각이 우리 사회의 일반 정서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투자 엑시트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벤처금융 전문가들은 국내 창업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창업 단계의 인큐베이팅보다는 오히려 기존에 투자했던 자금이 수익을 거둬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생리학적 구조로 따지자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소화를 잘 시켜도 배설 과정에서 막히면 중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 자금회수 시장은 심각한 왜곡현상에 빠져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회수 시장은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움직인다. 창업자와 투자자가 열심히 키운 기업을 제3자에게 매각해 수익을 거둬들일 때 구사하는 게 인수합병이라면 기업 상장을 시켜 주식을 일반인들에게 팔아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이 IPO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금회수 시장은 M&A 방식 사례가 극히 미미한 반면 IPO 방식으로 집중된 쏠림현상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기사의 사례처럼 M&A 방식의 자금회수시장이 더욱 활성화돼 IPO 일변도의 왜곡된 출구전략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M&A 외면·IPO 일변도' 왜곡된 구조

뛰어난 창업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 투자를 받아 회사를 정상으로 일궜더라도 투자금 회수가 막히면 창업생태계 구조는 고장 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국내 자금회수시장 구조를 살펴보면 M&A 외면과 IPO 과잉 편중 구조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들은 열 중 아홉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매각하는 구주매출 방식이다. 간혹 상장 이후 주가 상승을 예측하고 지분을 후에 파는 경우도 있다.

IPO 방식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 구조상 IPO만 고집해서는 국내 자금회수시장의 활성화가 요원하다는 게 핵심이다.

우선 스타트업이 일정부분 성장궤도에 진입한 뒤 IPO까지 나선다 해도 이 과정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맥킨지의 벤처산업 선순환 구조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이 창업에서 IPO에 도달하기까지 평균 12년이 걸려 7년 미만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비해 5년 이상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창업자의 비전이 보여도 투자자가 섣불리 베팅에 나설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유석호 페녹스VC 코리아 대표이사는 "평균 10년이 넘게 걸리는 IPO를 보고 투자하기엔 기간이 너무 길고, 인수합병은 활성화돼 있지 않다 보니 투자자들은 그냥 묶여버린다"며 "벤처투자는 확률게임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성공확률은 있어야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지고 많은 성공투자 사례가 나올 텐데 스타트업은 엔젤투자자의 무덤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자본시장의 규모가 기업공개를 겨냥한 스타트업들의 자금조달을 모두 수용할 만한 크기의 그릇이 못 된다는 점도 구조적 문제로 지목된다. 현재 한국거래소 상장사는 총 1959개사에 달한다. 올 1월 벤처기업 수가 3만개를 돌파한 점을 감안하면 이 가운데 1%만 IPO까지 살아남는다고 해도 300개 기업이 신규로 들어온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규모가 이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그렇다고 국내 벤처기업들이 국내를 넘어 해외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회수한다는 것도 꿈 같은 일이다. 기업가치 면에서 한국 벤처는 이스라엘과 대만 벤처의 10분의 1 정도로 평가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푸대접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73개(1228억달러), 대만은 8개(62억달러)인 데 비해 한국은 고작 2개(10억달러)뿐이다.

■기업가치 대신 소유에 매몰된 현주소

이처럼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이 유독 IPO 일변도로 쏠리면서 M&A 방식이 외면당하고 있는 배경을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A를 규제하는 제도적 문제를 비롯한 여러 원인들이 제시되지만 국내 창업기업가들의 창업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과거 재벌 오너 경영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세태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인이 어렵게 일궈 애지중지하는 회사의 지분을 본인이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는 것이다. 김기사를 매각한 박종환 대표가 "다음카카오에 회사를 파는 게 기업의 미래가치와 사회에 미치는 기여도 면에서 좋다"고 판단한 것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사고방식이 팽배한 것이다.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벤처로 성공한 이들이 회장님 직함을 유지하고 싶어 자신의 지분을 팔고 나오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에선 M&A를 하려면 최대주주만 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이 최대투자자가 M&A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잠재경쟁력 검증이 쉽지 않은 스타트업을 오랜 기간 걸리는 IPO 방식으로 투자를 선택해야 하는 엔젤.벤처캐피털 측에서도 고민이 많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3만425개사로 2011년 2만6148개사, 2012년 2만8193개사, 2013년 2만9135개사, 2014년 2만9910개사에 이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생존확률이다. 2013년 기준 국내 창업기업의 3년 후 생존율은 4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신규 사업자의 75.2%는 평균 5년 미만에 폐업을 신고한다. 창업 3년차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명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대다수라는 의미다.

과포화된 창업기업 가운데 IPO까지 갈 수 있는 업체를 골라내는 작업은 그야말로 모래밭 속 진주 찾기와 같다.

고영화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초기 투자의 경우 매출액이나 영업이익과 같은 계량적 지표가 전혀 없어 사업의 미래 가능성만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사업 아이템의 독창성이나 시장규모 등도 고려하지만 결국 사람을 보고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인성이나 리더십, 사회성 등 대표 개인의 능력 이외에 해당 스타트업의 미래를 판단할 만한 잣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기업가치가 높아져 계량적 지표를 조금이나마 갖춘 창업기업도 IPO 관문을 통과하기 쉽지 않다.

장일훈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기획팀장은 "시장환경이 급변하는 데다 산업별 특수성도 커 아무리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도 직접 투자해보지 않은 이상 투자수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살 만한 스타트업이 없다? 인력만 빼가는 대기업

스타트업은 태생적인 한계 탓에 수익구조가 취약하다. 이에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는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인수방식이 활성화돼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스타트업은 사업자금을 마련해 생존을 보장하는 모델이 일반화돼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M&A가 마비상태다. 한국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 절반 이상이 구글 등과 같은 대기업에 M&A되는 방식으로 엑시트하는 사례가 많지만,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M&A 엑시트 비중은 2.1%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M&A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세제혜택 등의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추천하는 스타트업.벤처기업 경영권을 대기업이 인수할 경우 대기업집단 계열 편입을 7년간 유예하는 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타트업 인수에 미온적인 국내 대기업들의 태도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각종 규제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외부 혁신에 대한 절실함이 외국기업보다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정보통신기술(ICT)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센터장은 "정부가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 평등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며 "스타트업들이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시작하면 대기업들도 새로운 경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M&A를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이 신생 벤처기업의 기술인력을 언제든지 빼갈 수 있는 구조도 스타트업 M&A가 부진한 이유로 꼽힌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대기업이 기술을 보유하고 싶으면 사람이 아닌 기술을 통째로 인수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기술유출로 기소된 719명 가운데 형 확정자는 464명이었다. 이 중 실형은 단 32명(6.9%)에 그쳤다.
집행유예 287명(61.9%), 벌금형 72명(15.5%) 등 상당수는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일부에서는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M&A가 창업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A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성공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에 사들여 자사에 편입하는 효과를 거둔다"며 "이는 신생 창업기업들의 대기업 종속화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병용 김용훈 고민서 김은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