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진정한 가치는 증식보다 '분배'에 있어
현대판 김만덕·임상옥 절실한 지금의 대한민국
현대판 김만덕·임상옥 절실한 지금의 대한민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는 만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의 본능인 소유욕이 부자로 표출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부자 중의 부자'인 상위 1% 부자는 일반인에게 동경심과 함께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이들을 동양에서는 갑부, 서양에선 슈퍼리치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경제활동도 궁극적으로는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자와 관련된 속담이나 격언도 부지기수다. 기원전 중국 전한시대의 사마천은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에서 부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잘 살려고 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깨우치게 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그러므로 재물이란 것은 능력만 있으면 하염없이 긁어모으려고 한다.' 더 나아가 '자신보다 열배 잘 사는 사람을 대하면 비굴해지고, 백배 잘사는 사람에게는 경외감이 들고, 천배를 잘 살면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고, 만배가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인간의 섭리'라고까지 했다.
부자는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 판매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의 희생이 부를 축적하고 늘려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는 분배(환원)하는 게 맞다고 사마천은 주장한다.
'군자는 의로운 일에 밝지만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고 한 논어 구절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래서 부자도 부자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한 뒤 재물 지키기에만 급급해 하는 졸부가 있는가 하면 번 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정승처럼 베푸는 수많은 성인군자도 있다.
소설가 이수광이 쓴 '조선부자 16인의 이야기'(스타리치북스)는 조선시대 1% 갑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판 화식열전이다. 당대 최고의 갑부가 된 비결과 그들의 가치관을 들여다봤다.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 시장의 성인군자 유기장 한순계, 부자 역관 변승업이 등장한다. 변승업은 숙종 당시 조선 최고의 부자였지만 죽을 때 빚 문서를 모두 태워 가난한 이들의 빚을 면해줬다.
얼음 하나로 300년간 가업을 잇게 한 얼음장사 강경환의 이야기와 사방 백리 안에 굶주린 사람을 없게 한 경주 최부자 얘기도 감동적이다.
이밖에 서해바다를 주름잡은 해운왕 김세만과 조선 운송업의 대부 엄웅찬, 화류계의 여왕 제주 거상 김만덕 등의 일화도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재물의 축적과 증식도 중요하지만 부자의 진정한 가치는 분배에 있다는 공통분모를 끄집어 냈다.
축적과 증식, 그리고 분배를 조선시대 부자들의 3대 요소로 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라고 하면 재물을 쌓고, 쌓인 재물을 잘 부풀리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분배야말로 부의 완성이요, 부자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서술했다.
김만덕과 임상옥은 자연재해와 극심한 흉년에 전 재산을 털어 백성을 규휼했고, 과객을 후하게 대접한 김제의 장석보 후손도 가난한 백성을 돌보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김근행과 최재형은 북벌과 독립운동에 번 돈을 아낌없이 희사했다. 이들을 하나같이 '나눔의 부'를 실천했다. 부자의 진정한 가치는 축적보다 분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거인들이다.
부자의 소중한 가치는 분배에 있다는 선인들의 지혜와 격언이 수백년을 건너뛰어 현 시대의 부자들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투자의 귀재, 오하마의 현인으로 불리는 현존 최고의 슈퍼리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가치관도 이들과 많이 닮아 있다. 버핏은 버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곳에 쓰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았다.
물질만능, 황금만능의 배금주의 시대에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는 부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극심한 청년 일자리 흉년에 허덕이고 있다. 현대판 김만덕·임상옥은 어디 없나.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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