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일해도 승진은 불가능.. 정규직 전환 안돼 미래도 없죠"
민간회사서 10년 일하고 경력 인정받아 옮겼지만 최대 근무연한은 5년
재계약은 1~2년 단위 공직사회 순혈주의도 부담
민간회사서 10년 일하고 경력 인정받아 옮겼지만 최대 근무연한은 5년
재계약은 1~2년 단위 공직사회 순혈주의도 부담
행정이 전문화될수록 우수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외부인재를 포용할 환경은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대 5년을 수명으로 승진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현재 계약직 공무원 제도로 공직사회 순혈주의 타파는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준공무원 격인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하늘의 별 따기다. 공직사회는 여전히 배타적이며 경직적이다. 이들에게 현재의 공무원 제도는 구조적으로 깰 수 없는 콘크리트천장이다. 공직사회 '미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가명으로 처리했다.
"10년이나 다니면서 일 잘한다는 칭찬은 수없이 들었지만 승진은 고사하고 정규직 공무원도 될 수 없었어요. 현재 제도상 계약직 공무원의 정규직 전환은 봉쇄돼 있습니다." 임기제 공무원(이하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지 10여년. 첫 2년 계약 이후 재계약은 2년, 1년 단위로 이뤄졌다. 해당 직위에서 최대 근무연한은 5년이었다. 계속 근무하고 싶으면 다시 계약직 공무원 공개모집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부처의 계약직 채용시험에 응시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김영훈씨(40대 초반.가명)는 중앙행정부처인 A부에서 최근까지 계약직 5급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계약직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민간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가 계약직으로 채용됐던 건 전문경력을 인정받아서였다.
현재 계약직으로 채용된 공무원들에게 정규직 전환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다른 공무원들과 같은 일반직 전환은 불가능하고, 연봉이 오르거나 승진을 하는 등의 동기부여도 완전히 봉쇄돼 있죠." 승진이나 정규직 전환이 막혀 있는 그에게 조직이 부여한 동기부여라고는 일 잘한다는 칭찬이었다. 칭찬과 함께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계약이 1년 단위로 끊어질 때는 은행에 가서 적금 가입도 할 수 없었다. "일할 때는 전문가다 하고 자긍심을 갖고 했지만 그건 계약기간 내의 일이고, 계약종료 시기가 다가오면 가장이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죠."
칭찬은 그의 몫이었지만 조직에서 주는 상은 대부분 고시나 공채 출신 공무원들 차지였다. "상도 쓸데가 있는 사람이 받아야죠. 상을 받으면 승진 시 가점이 되는데 승진할 수 있는 사람들 몫이에요." 계약 연장으로 한자리에 15년씩 있는 계약직 공무원도 봤다고 했다.
"밑에 데리고 있던 7급 주무관이 국장이 되는데 그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어요. 이게 계약직 공무원의 숙명 같은 것 아닐까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인사혁신처에서 일반 임기제로 정원을 따놓고선 처음엔 민간 출신 계약직을 그 자리에 채용했다가 몇 년 뒤 내부 직원을 앉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는 '폐쇄성' '패거리 문화' '공무원 사회의 거대한 힘'이란 단어를 쏟아냈다. 그는 계약직 공무원 당사자나 조직 모두 "얼마 안 있다가 나갈 사람" "곧 옮겨야 할 직장"이라는 식으로 서로의 눈높이가 자연 낮춰지게 된다고 했다.
이준현씨(40대 중반.가명)는 최근까지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었다. 현재는 민간에서 새 직장을 구했다. "공무원을 오래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던 건 나는 단지 하나의 기능인이지 결코 중요한 보직을 맡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라고 말했다. "임기가 정해져 있고, 승진도 불가능하고…아무리 5년을 버텨도 한창 일할 나이인데 미래비전이 없는 거죠. 엄격하게나마 정규직 진입 기회를 어느 정도는 열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로부터 오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민간에서 소위 잘나갔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던 사람일수록 더하다고 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일반직) 전환은 부처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사안이지만 조직은 굳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구설.특혜 시비가 부담이고,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민간인을 다시 뽑아 쓸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선 내부 인물이 승진할 때 징검다리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희영씨(20대 후반.가명)는 공무원과 똑같이 근무하고, 공무원 행동강령 준수를 요구받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은 아니었다. 그는 세종시 중앙행정부처 B부처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다. 공무원연금이 아닌 국민연금 가입자였으니 정식 공무원은 아니었다. 박봉이었지만 서울에서 세종시로 매일 출퇴근했다. 윤씨에겐 바람이 있었다. 비록 정식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감 같은 게 있었다.
"오래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공직사회의 위계질서나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의욕도 강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같은 과의 다른 한 명이 얼마 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바람에 저까지 전환하는 건 어렵다는 얘길 듣고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비정규직법은 현실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더구나 계약직 직원의 임신과 출산은 퇴직과 일맥상통했다. 그의 동료는 출산을 앞두고 퇴사했다.
중앙행정부처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63만4051명이며, 이 중 외무.경찰 등 특수직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직 공무원은 15만6540명이다. 이 가운데 일반 임기제 공무원(계약직.정원 내)은 688명, 전문 임기제 공무원은 702명(계약직, 정원 내.외)이다. 두 직군을 모두 합쳐도 전체 일반직 공무원 중 0.8%밖에 안 된다. 윤씨와 같은 기간제 근로자는 공무원 통계에도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민간인이기 때문에 별도로 집계하지 않으면 관리할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통계는 (민간에 관한) 고용노동부가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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