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핀테크 '빈수레' 안돼" 업계, 금융사 API 공개 촉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19 17:19

수정 2015.10.19 17:19

오픈 API 꺼리는 금융업계 패러다임 바꿔야 혁신 가능
보수적인 '갑'행태 멈춰야
금융사 오픈 API를 활용해 은행, 증권, 카드사 등 각종 금융 거래 내역과 수익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미국 온라인 자산관리 전문 핀테크 기업 '민트'의 홈페이지 화면. 국내의 경우 현재 금융사의 API가 공개되지 않아 민트와 같은 서비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사 오픈 API를 활용해 은행, 증권, 카드사 등 각종 금융 거래 내역과 수익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미국 온라인 자산관리 전문 핀테크 기업 '민트'의 홈페이지 화면. 국내의 경우 현재 금융사의 API가 공개되지 않아 민트와 같은 서비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규제가 '여우'라면 은행.카드사 등 기존 금융사 기득권의 벽은 '호랑이' 입니다."

최근 한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핀테크 세미나에서 만난 한 핀테크 기업 대표의 토로다.

그는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당국의 규제는 최근 금융개혁 추세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면서 "오히려 은행, 카드사의 보수적인 '갑' 행태가 핀테크 혁신을 가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이 금융개혁 일환으로 추진 중인 핀테크 혁신이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존 금융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핀테크 혁신에 소극적

19일 핀테크 업계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서비스 혁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다. API란 은행, 카드사 등 금융사 내부의 정보와 서비스 명령어 덩어리다.
핀테크 기업은 이를 활용해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오픈 API를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 중 한 곳이 미국에서 개인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트'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은행.카드.증권 등 1만6000개 이상의 북미 금융기관의 거래 정보를 통합 제공한다. 민트 고객은 은행 잔액은 물론 증권사 펀드 수익률 등 모든 금융사의 계좌, 수익률 현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2006년 설립된 이 회사는 3년 뒤에 회계소프트웨어 회사인 인튜이트에 1700만달러(약 1900억원)에 인수됐고 현재 1700만 회원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민트와 같은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은행, 증권, 카드 등 국내 금융사의 API 공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오픈을 목표로 은행, 증권사 등이 참여한 '금융권 공동 API'를 출시할 방침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융사가 API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또 그마저도 카드사와 보험사 등은 빠져 있어 반쪽짜리 API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씨티 은행 등 외국계 금융사는 일 년에도 수백개의 API를 공개해 핀테크 업체와 신기술을 개발한다"며 "금융위가 공동 추진 중인 오픈 API는 10개 안팎에 불과해 보여 주기식에 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의 경우 영국, 미국 등 핀테크 선진국에 5년 이상 뒤쳐져 있는데 국내 금융사들은 아직도 경쟁사 눈치만 보고 있다"며 "일부 은행 등이 추진 중인 핀테크 육성책도 사실상 '면피용'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패러다임 전환 필요

기존 금융사들이 API 공개에 소극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첫째는 기존 사업 영역으로도 수익성에 큰 문제가 없고, 새로운 핀테크 업체의 등장으로 기존 사업 영역을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인호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삼성 사장단 대상의 한 강연에서 "삼성페이 등 디지털 화폐의 등장으로 기존 은행이 해체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설자인 빌게이츠도 미래의 은행은 '은행 없는 은행(bank without bank)'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픈 API 생태계를 조성해 기존 은행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협은행의 오픈 API 실험이다. 농협은행은 올해 4월 오픈 API 공개를 발표하고, 지난 8월 20개 핀테크 업체와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오는 12월에는 이중 5개 기업을 선정해 실제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핀테크 기업에 은행의 자산인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더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협은행 손병환 스마트금융부장은 "타 은행 관계자들이 API공개로 알리페이, 삼성페이와 같은 IT 기업에 기존 은행의 주도권을 뺏기게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며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농협을 중심으로 알리페이와 삼성페이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들어와 농협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PI 공개로 은행이 만들지 못하는 서비스를 핀테크 기업이 제공하면 그 고객도 결국 은행 고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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