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2) "임산부 맞아요?".. 주위 눈치·핀잔에 곤혹스러운 임산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01 17:36

수정 2015.11.01 17:36

'임산부 배려석'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서울 지하철 1~8호선 차량 1대당 2석씩 마련
일반좌석에 마련되니 중복특혜·역차별 논란도
지하철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한 승객이 앉아있다. 사진=윤지영 기자
지하철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한 승객이 앉아있다. 사진=윤지영 기자

#. 임신 4개월차인 서모씨(29)는 지하철을 탈 때면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아이인 데다 체구가 왜소한 탓에 임신한 티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 때면 임산부석에 앉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눈치를 줄 때면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혹시 몰라 산모수첩까지 갖고 다니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 받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휴대폰 게임 등을 하며 모른 척하거나, 노인들은 오히려 "노약자를 보호해야지"라고 하는 통에 임산부 배려석이 설치된 지 2년여가 됐는데도 여전히 임산부들이 이용하기 불편한 자리가 되고 있다.


올해 7월부터는 눈에 잘 띄게 분홍색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임산부들의 불편한 상황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전시성 정책'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 이용을 둘러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점검해 본다.

■임산부가 눈치보는 임산부 배려석

최근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임산부를 위한 각종 '배려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을 임산부들이 마음 놓고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임신 초기인 경우 거의 티가 나지 않아 배려석에 앉기가 눈치 보이고, 노년층 이용객에게 밀려 좌석 양보를 요구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 10월부터 수도권 지하철 1~8호선에 기존 노약자석과 별개로 차량 1대당 2석씩 총 7140개의 임산부 배려석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임산부 배려석을 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지난 7월부터 배려석 뒤쪽 벽과 좌석, 바닥 색을 '분홍색'으로 바꿨다.

하지만 아직도 정작 이를 이용해야 할 임산부들에겐 결코 편안한 '지정석'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임신 초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들도 일반 승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려석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임산부들은 전철 이용객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은 물론 평상시에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가 눈치 보인다.

임신 3개월차인 정모씨(28)는 "임신 초기라 티가 별로 나지 않아 노인들의 눈치가 보여 기존 노약자석에는 거의 앉지 않으려 한다"며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도 노인이나 일반 승객이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임산부 김모씨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려 해도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가끔 양보를 받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임산부라는 것을 말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통에 곤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임신 2개월차인 신모씨(31)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때마다 사람들이 '정말 임신한 거야'라는 식의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봐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다"며 불편한 기억을 떠올렸다.

일각에선 기존 노약자석이 있는데도 임산부 배려석을 추가 지정한 것은 '전시성 정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이미 임산부나 노인을 위한 노약자석이 있는데 전용석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은 자리 하나를 없애는 꼴"이라면서 "일주일 내내 야근하다보면 건장한 직장인도 힘들어 좌석에 앉아가고 싶은데 성차별을 받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장인 김모씨(30)는 "노약자석 일부를 임산부 '전용'석으로 바꾸는 게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전시성 정책'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만 또 다른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일반 좌석이 다 차 있어도 임산부 배려석만큼은 비워두려 한다"면서 "배려석이 생긴 뒤 임산부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임산부에 '배려' 공감부터

일각에선 임산부 배려석을 설치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임산부 등 약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배려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부부처에서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저출산 타개를 위한 임산부 배려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범국민 캠페인' 등을 통해 사회적 배려문화 정착에 대한 공감대를 꾸준히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

50대 중반의 권모씨는 "아직 사람들 사이에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임산부 배려석의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산부 배려석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포스터 부착과 캠페인, 지하철 내 안내방송을 꾸준히 병행해 배려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