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 '강철나비'의 새도운 도약](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5/11/09/201511091843020281_s.jpg)
발레리나들은 토슈즈를 신고 발 끝으로 잘도 버틴다. 버티기만 하나. 그 상태로 걷고 점프하고 한쪽 다리를 직선으로 들어올리기도 한다. 너무도 가뿐해 보여서 쉽게 생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발레를 베워본 사람이라면 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일. 불가능을 가능으로 옮기는 이들이 발레리나들임을.
몸이 성할 날이 없는 이유다.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가장 잘추는 발레 무용수"를 꿈꾼다. 20년 가까이 발레를 하면서 국내외에 이름깨나 날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37)의 말이다. 올초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나이가 들며 퇴색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싶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만하면 '춤 중독'이 아닐까 싶었다. 마라토너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가 중독성 때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이르면 마약을 주입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러너스 하이'든 뭐든 못겪을 일도 다 겪어본 '강철 나비'가 지난 8일 마지막 무대로 안녕을 고했다. 1985년 18세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 1위,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동양인 최연소 무용수로 입단, 1999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 선정 등 한국 발레사에 큰 획을 그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48)이다. 모든 현역 발레리나들의 꿈인 그다.
앞서 4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충분히 했다. 지금 당장 그만 둬도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날 드라마 발레의 정수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아나로 나선 그는 고별 무대에서 그 어떤 무용수보다 가볍게 날았고 우아하게 움직였다. "더 활동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입증되는 무대였다. 그러나 그는 "100%일 때 떠나고 싶다"고 했다. "아름답고 뛰어난 무용수들이 많다"며 "내가 계속하면 후배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도 했다.
3회 전석 매진, 2000여명의 기립박수, 15분간 이어진 커튼콜은 그의 마지막 기록이자 제2의 발레 인생의 신호탄이었다. 타티아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고 오열했지만 강수진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제 후진 양성과 발레단 운영에 전념한다. 교육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강수진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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