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지역활성화 시킨 세입자 보따리 싸는 현실
가로수길·경리단길·삼청동·홍대 앞 등 임대료 급등
초기 세입자 밀려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들어서
서울시 '임차인 보호방안'에 건물주들 "재산권 침해"
가로수길·경리단길·삼청동·홍대 앞 등 임대료 급등
초기 세입자 밀려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들어서
서울시 '임차인 보호방안'에 건물주들 "재산권 침해"
#. 김모씨는 3년 전 동료들과 함께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음식점과 카페를 열어 성업을 누렸지만 최근 1년 전부터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김 씨가 영업 중인 이 일대를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인근 상가의 임대료가 두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공급면적 70㎡ 남짓한 1층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80만원가량이던 월세가 1년 새 130만원으로 올랐다"며 "우리 상가는 그나마 적게 오른 편이고 주변에는 두 배 이상 오른 곳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상가 주인들이 동네가 뜨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대료를 올리고 있다"며 "아직 상권이 무르익은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올리면 상권이 뜨기도 전에 다 망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함께 자리를 잡은 동료 중 절반은 2배 가까이 오른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갑자기 오른 임대료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관련기사 내 아이를 위한 CCTV설치 "인권 침해" vs. "아이 안전위해 필수" "임산부 맞아요?".. 주위 눈치·핀잔에 곤혹스러운 임산부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종로 삼청동, 홍대 앞 등 요즘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상권에 오랜만에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황당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장사가 잘되기로 소문난 맛집이나 소규모 점포가 어느 새 없어지고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상권이 좋아지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그 일대를 명소로 키워낸 세입자(임차인)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빈곤층이 사는 동네에 외부인인 중산층 '젠트리'(신사계급)가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를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살린 세입자 보따리 싸는 현실'로 정하고 실태를 짚어봤다
■홍대 앞 고유한 문화 사라지고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홍대 앞 골목길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저렴한 임대료로 젊은 예술가나 청년, 자영업자들이 모여 독창적 문화 중심지로 키워낸 곳이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며 상권이 살아나자 대기업이 저마다 체인점을 열고, 이로 인해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정작 상권을 살린 이들과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고 있다.
종로구 인사동 거리도 대표적인 사례다. 인사동 입구부터 거리 특성과 맞지 않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사동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모 대기업 커피체인이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상을 약속하고 현재의 위치에 입점했다"며 "그 정도의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영세상인은 결국은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런 경제논리에도 "특정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하고 낙후된 지역을 신흥상권으로 키워낸 임차인의 권리가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며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지자체 대책보다 상생 인식전환이 우선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서울시가 관련 대책을 내놨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18일 '2025 서울시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가결하고 특정 건물에 건축규제 완화와 같은 지원을 해주면 건물주는 일정 기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방식의 임차인 보호방안을 추진한다. 또 시가 건물을 매입해 저렴하게 제공하거나 상인들이 건물을 매입할 수 있도록 장기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서울형 장기 안심상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상권 전부에 도입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현행 임대차보호법에도 환산보증금 4억 이하에는 9% 이하로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하고 있지만 사실상 보증금 1억원, 월세 300만원이면 이 기준을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서울 중심상권의 절반 이상이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대 앞 거리가 옷가게로 뒤덮이며 상권이 쇠퇴한 것처럼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면 공멸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상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방식"이라고 말했다.
■"주변시세 반영 막는 건 재산권 침해" 반론
하지만 과도한 임차인 보호는 건물 등 부동산 소유권(임대인)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법적인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자본 유입은 필수라는 측면에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상권이 활성화되며 건물 증축, 리모델링 등으로 동네가 새롭게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입장이다. 합정역 인근의 한 건물주는 "언제까지나 영세상인 위주의 소규모 상권만으로는 낙후된 지역을 바꿀 수 없다"며 "누구라도 주변 시세가 올라가면 그에 맞게 임대료를 더 받는 것인데 이를 통제하는 것은 반시장적 사고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성수동 M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이 동네의 땅값이 1년 새 3.3㎡당 1000만원 이상 올랐는데 임대료도 당연히 오르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해 임차인이 권리금도 받을 수 있는데 임대료를 올리는 것만 잘못됐다고 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나 성동구에서 임대료 올리는 것을 막는다고 하는데 그건 주인들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닌가"라며 "건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죄인처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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