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驛, 新亭네거리, 高速터미널, 까치山'
이들 단어의 정체는 중국인·일본인 관광객 편의를 위해 서울 지하철 안내판에 표기된 한문 역이름이다. 한글도, 중국어도, 한문도 아닌 국정 불명의 지하철역 안내판인 셈이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한문으로 된 지하철역 안내판이 설치됐으나 국적불명 단어로 인해 안내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적불명 단어로 된 역 안내판
24일 기자가 서울시내 지하철역을 확인한 결과, 서울역과 까치산, 신정네거리,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 서울대입구, 고속터미널 등 주요 지하철역 안내판 곳곳에서 국정불명의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황당한 지하철역은 서울역과 서울대입구였다.
서울역의 경우 지하철 안내판에 '서울驛'으로 표기돼 있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순 한글로, 한자 표기는 없는 상태다. 한문 표기인 '驛(역)'의 경우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站(참)'을 지하철 역명 표기에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안내판에 적힌 '서울驛'이라는 단어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서울대입구는 현재 안내판에 '서울大入口'로 적혀 있다.
이날 서울대입구역에서 만난 중국인은 "한글을 모르는 중국인이 안내판을 보면 서울대입구역을 '大入口(대입구)'로 이해할 것"이라며 "지하철 노선도를 아무리 봐도 '大入口(대입구)'라는 지하철역은 없으니 당황스러워 한 것"이라고 전했다.
지하철 역명 외에도 안내판의 인근 주요 건물에 대한 한문 표기도 마찬가지다. 가령 주민센터의 경우 '住民센터'로 표기하고 있다. 또 신정네거리역 안내판에는 '(주)서부트럭터미널방면'을 '(株)西部트럭터미널方面'으로 쓰고 있다
중국인 런지예(29·여)는 "형편없는 안내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이런 안내판을 보고 어떻게 찾아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평소 중국 관광객들이 지하철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지적했다.
■"중국어로 교체, 예산이 부족해서…"
이같은 지하철역명 표기가 만들어진 것은 순한글 단어의 경우 마땅히 한문으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명칭 가운데 순한글 부분은 그대로 한글로 쓰고 나머지 한문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만 바꾸다보니 국적불명의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국적불명 안내판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서 서울 지하철역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는 역내 안내판의 한문에서 중국어 및 일본어로 바꾸는 작업을 지난 2013년부터 진행 중이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해 2년 이상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옛 한문 표현이 남아 있다 보니 일부 역 안내판 표기에 문제가 있다"며 "2013년부터 안내판 개선작업에 착수, 총 11억원의 예산을 투자했지만 예산부족으로 완료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내판 개선작업이 후순위로 밀려 개선작업 완료 시점도 확실하지 않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정작업을 진행했고 오는 2018년까지 환승역을 대상으로 다시 작업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현재 안전 관련 예산이 먼저여서 안내판 개선예산이 부족해 순차적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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