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새해 희망을 여는 사람들] 팍팍한 삶에도..희망의 빛은 떠오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31 16:30

수정 2016.01.04 16:09

새해 희망을 여는 사람들
손님들 십시일반으로 가게 접을 위기 넘긴 32년 분식집 사장님
2부리그서 창단했지만 선수들 피나는 노력으로 1부리그 오른 시민축구단
나눔 실천하는 따뜻한 환경미화원
시민의 발 책임지는 친절 버스기사
단골들의 도움으로 가게를 다시 연 강원 춘천 '꽃돼지 분식' 이기홍 할머니, 새벽을 깨우는 환경미화원 김남원씨, 올해부터 1부 리그로 올라간 프로축구단 '수원 FC'의 김한원 선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왼쪽부터).
단골들의 도움으로 가게를 다시 연 강원 춘천 '꽃돼지 분식' 이기홍 할머니, 새벽을 깨우는 환경미화원 김남원씨, 올해부터 1부 리그로 올라간 프로축구단 '수원 FC'의 김한원 선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왼쪽부터).

【 서울·춘천·아산·부산·수원=김유진 기자 김가희 김진호 김현 변영건 신현보 이진혁 이태희 수습기자】 춘천에서 32년간 장사를 해온 이기홍 할머니의 '꽃돼지 분식'은 춘천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통한다. 꽃돼지 분식이 희망의 아이콘이 된 것은 2014년 3월 도로확장공사로 가게가 헐릴 위기에 처하면서다.

할머니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은 주변 사람과 손님들을 통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금활동이 시작됐고, 자선공연도 열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특히 어린 시절 단돈 500원, 1000원만으로도 배부르게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었던 청년 등 단골들이 할머니 가게에 큰 희망이 됐다. 정성이 모였고 꽃돼지 분식은 7개월 만에 근처에 새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춘천에서 배고픈 이들의 든든한 쉼터이자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인근에서 하나미용실을 운영하는 우영현씨(49·여)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열심히 해오신 할머니를 보면서 희망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꽃돼지 분식 부활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역공동체 '페북춘천' 운영자 윤지현씨(가명)는 "희망은 잃은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은 것"이라면서 "(새해에는) 이 할머니 이야기 외에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들, 남을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고 그 속에서 또 다른 희망과 행복을 보고 싶다"고 전했다.

"삶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희망의 끈' 꼭 쥐고

축구팀 '수원 FC'는 2016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희망차다. 지난해 12월 5일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으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시민구단으로서 2부 리그인 챌린지에 참가한 게 지난 2013년. 수원 FC는 피나는 노력 끝에 지난해 챌린지에선 3위까지 올랐다. 그 후 1부 리그 승격을 결정짓는 플레이오프에서 부산팀을 이기면서 1부 리그에 전격 입성하는 영광을 얻었다. 2부 리그에서 처음 창단한 팀이 1부 리그에 오른 것은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처음이다.

수원에는 이미 삼성이 후원하는 '수원 삼성'이 버티고 있다. 축구 팬들은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이 맞붙는 '더비 매치'에 벌써부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화려한 경력도, 높은 연봉도 없지만 뛰고자 하는 의지로 뭉친 선수들이 팀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무명의 인생이다. 수원 FC 김한원 선수(34)는 "나쁜 일은 딱 그날로 잊고, 좋은 일만 생각하면 분명 기회가 올 것으로 믿는다"며 "운동이나 사회생활이나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한 번은 온다. 그 기회가 올 때만큼은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리멤버'라는 명함관리 애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한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대표(34)는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2013년 6월 창업했다. 초기 6개월가량은 투자금을 모으기도 버거웠다.

다행히도 투자자들이 회사의 가능성을 알아보면서 현재까지 95억원을 유치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창업 1년 만에 '2014년을 빛낸 스타트업 톱100'에 선정됐고 '2015 대한민국 올해의 브랜드' 대상의 영예도 안았다.

최 대표는 힘들 때마다 애정, 긍정, 열정의 '3정'을 생각했다. "이 세 가지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주문과도 같았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도전하고 실천하고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희망을 찾는다.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오늘도 삶은 계속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잠든 새벽 4~5시면 환경미화원들은 여지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서울 서대문구 환경미화원 김남원씨(52)는 청소하는 자신의 옆을 지나면서 시민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부도 빼놓지 않고 있다. 최씨는 "동료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이웃들이 더욱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돈이나 쌀을 모아 전달하고 있다"면서 "저희보다 어려운 분들이 많아 우리가 챙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더 뿌듯해짐을 느낀다"고 전했다.

N26버스는 서울 강서구와 중랑구를 오가는 심야버스다.

매일 자정에 강서공영차고지를 출발해 한 바퀴 돌면 새벽 3~4시가 돼서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운행시간이 이렇다 보니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교차한다.

N26버스 운전기사 이원우씨(55)는 "나는 시민들에게 하루를 마무리하게도, 시작하게도 해주는 사람(웃음)"이라면서 "희망을 찾기 전에 매일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사명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겐 시민들을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무사히 운행을 마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야간에 고속도로를 쉴새없이 오가며 산업의 젖줄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화물차 운전사 조순동씨(59)는 충남 아산에서 자동차 부품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새해엔 기러기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궁금했다.

"(기러기마저) 앞서가는 새가 나중엔 뒤에 날고, 뒤따라 날던 새가 어느새 앞서 날며 서로 역할을 공평하게 나누질 않느냐. 마냥 앞서 날기만 해도, 거꾸로 뒤따라 날기만 해도 오래가다 보면 지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눈에 보일락말락 눈물이 비쳤다.
그러면서 말했다. "꼭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소부가 있어 거리가 깨끗하고, 화물 운전기사가 있어 물건들이 운반되는 것처럼 내가 있어야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팍팍한 인생살이도 조금은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july2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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