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627곳 4만5128면
벌금 없어 남성도 이용
'트렁크 시신 사건'처럼 여성상대 범죄에 악용
#1. 서울 가산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씨(32)는 남성임에도 '여성전용주차구역'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있다. 주로 출입구쪽에 위치해 편한 데다 장애인용 주차구역과 달리 벌금도 없어 굳이 지켜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소 이용하는 3층짜리 공영주차장 건물의 1층이 전부 여성전용주차구역"이라며 "여성 운전자가 그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놓으니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벌금 없어 남성도 이용
'트렁크 시신 사건'처럼 여성상대 범죄에 악용
#2. 4세 딸을 둔 워킹맘 최모씨(37)는 여성전용주차구역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대개 입구와 가깝고, 주차 공간도 넓어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도 주차가 쉽다는 이유에서다. 최씨는 "남자들이 여성전용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것이 보이면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이라면서도 "그러나 남자들이 많이 댄다고 해도 관리가 되지 않음을 탓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건 답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운전자가 늘면서 함께 증가하고 있는 여성전용주차구역. 그러나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주차가 편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있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여성은 운전을 못한다'는 차별적 인식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대형 마트 여성주차구역에서 발생한 '트렁크 시신 사건'처럼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남성전용주차구역도 만들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공간이 범죄 온상?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월 개정된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 25조'에 따라 서울에 새로 생기는 주차장에는 여성전용주차공간 지정이 의무화됐다. 30면 이상의 주차장일 경우, 여성전용 주차공간 설치 대상이며 노상(도로 위)은 10% 이상, 노외 및 부설 주차장에선 20% 이상 여성전용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시내 여성전용주차구역은 총 66개소 1433면 더 늘어났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생기기 시작한 서울 시내 여성전용주차구역은 총 1627개소 4만5128면으로 집계된다. 이는 애초 여성운전자들이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 서울시의 '여행(女幸·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실제로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유용하다는 의견도 있다. 직장인 진모씨(40)는 "성범죄 등에 있어 어느 정도 보호구역이 될 수 있고, 특히 주차를 잘하지 못하는 운전자의 경우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남성 운전자들을 피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용주차구역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워킹맘 박모씨(38)는 "초보운전일 때는 주차공간이 넓은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며 "차라리 '초보운전 전용 주차공간'이나 '3살 이하 영유아 동반 차량 주차공간'을 지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전업주부 조모씨(46)는 "이제 여성운전자가 아주 많아졌는데 굳이 주차구역을 따로 둘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들이 오히려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사고를 불러와 남녀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운전 못한다"는 여성 편견 조장
무엇보다 여성전용주차구역은 하나의 미봉책일 뿐, 범죄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직장인 김모씨(31)는 "여성전용주차구역은 약자만 모아놓아 범죄 노출이 더 쉬워지는 상황"이라며 "전체적으로 주차장을 더 밝게 하거나 인력 개선 등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직장인 강모씨(31)도 "여성운전자가 많아졌고, 여자가 운전한다는 것만으로 약자는 아니다"며 "차라리 장애인구역을 늘리는 등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성모씨(30)도 "여성전용 주차구역을 만든 취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남성이 여성보다 운전을 잘하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전용 주차공간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좀 더 안전한 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씨(48)도 "전용구간에 대해 실질적인 처벌이 없어서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좀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도 위반 시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여성행복 프로젝트 차원에서 위반 시 제재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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