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등 외신들에 따르면 폭스바겐과 미 환경보호청(EPA)간 민사 소송을 다루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은 이날 열린 공판에서 양자가 보상금 제공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보상액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최소 100억달러(약 11조43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반쪽짜리 합의에 논란 커질 듯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미국 내 2000cc급 디젤 차량 48만2000여대를 대상으로 2가지 형태의 보상을 실시한다. 회사가 소유주에게 차를 되사거나 배출가스 관련 부품 수리 및 금전적 배상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NYT는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차주들이 수리를 받는 것보다 회사에 파는 방식을 선호한다며 판매 가격 역시 현재 신차가격보다 높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중고차 시장조사기관인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문제차량 전부를 되산다면 약 70억달러를 써야 한다. NYT는 폭스바겐이 지난해 9월 배출가스 조작이 폭로된 이후 사태수습을 위해 적립한 금액이 76억달러 안팎이라고 지적했다.
보상 대상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 민주당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메사추세츠주)와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코네티컷주)는 이번 합의를 놓고 3000cc급 디젤 차량도 같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3000cc급 차량은 약 9만여대로 추정된다.
비록 민사부문이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형사부문이 남아있다. 미 법무부가 폭스바겐을 상대로 벌이는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독일과 프랑스, 우리나라 등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만약 지난 1월부터 리콜에 들어간 유럽 소비자들이 미국과 같은 배상을 요구할 경우 폭스바겐의 재정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번지는 조작혐의
폭스바겐은 다행히 이번 합의로 급한 불을 껐지만 세계 자동차업계 전반을 뒤덮은 긴장감은 새로운 조작 혐의가 드러나면서 더욱 팽팽해지는 추세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의 아야카와 데쓰로 사장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서 팔린 경차 62만5000대의 연비를 실제보다 5~10% 낫게끔 조작했다고 시인했다. 발표 이후 주가는 30%이상 폭락했으며 문제차종 4종에 대한 생산과 판매를 중지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2일 미쓰비시자동차가 다른 자동차 4종에 대해서도 연비 조작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지난 2000년과 2002년에도 차량 결함과 관련해 당국에 허위보고를 했던 전력이 있다. 일본 언론들은 당시 미쓰비시그룹이 그룹차원에서 자동차부문 재건을 도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개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작혐의에 휘말린 브랜드는 이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는 21일 발표에서 미 법무부의 요구로 미국 내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인증절차를 내부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알렸다. 다임러는 부정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며 당국과 협력을 강조했다. 미국의 메르세데스-벤츠 디젤 차량 차주들은 이달 초 집단소송을 내고 자신들의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 장치가 탑재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에도 해당 차량들에 기온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꺼지는 설계가 적용됐다는 소송이 제기됐다. 다임러는 소송들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으나 미 환경당국은 관련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한국 법적대응은 아직 진행 중
국내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 의심되는 폭스바겐그룹 차량은 12만대에 이르지만 소비자 보상은 갈길이 멀다. 현재 환경부는 부실한 리콜계획서 제출을 이유로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법무법인 바른이 피해 보상건으로 4000명이 넘는 원고를 모아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은 최근 환경부로부터 두 번이나 리콜계획서를 퇴짜 맞은 상태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소비자도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인 만큼 판단은 사법부에서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조작된 폭스바겐 15개 차량 중 소프트웨어가 개발된 차량 1개에 대한 리콜계획서라도 먼저 내라고 공문을 보냈다"라며 "5월 중 (3차)리콜계획서를 1개라도 내지 않으면 리콜계획 자체를 불승인(반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가 리콜계획서를 불승인할 경우 행정조치가 중단되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는 당초 폭스바겐에 대해 부실한 리콜계획서 제출, 리콜명령 위반 등 2가지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따라서 환경부의 행정조치가 멈추면 검찰은 배출가스 조작 외에 리콜명령 위반 등에 대해서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이 같은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리콜이 진행돼도 보상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해당 모델이 총 50여종에 달하고, 각각 일일이 환경부로부터 리콜 승인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대상 모델 전부에 대한 리콜 승인이 떨어지기까지는 최소 6~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jw@fnnews.com 박종원 정지우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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