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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극복 '소프트 파워'에 길이 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경제정책 분석.. 근혜노믹스에서 유노믹스까지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22 19:51

수정 2018.07.23 00:40

玄의 '창조경제' 崔의 '내수부양' 柳의 '구조조정'
1기 현오석-조원동 'KS라인' 청와대가 큰그림 그리면 기재부가 로드맵 짜던 1기
창조경제·경제민주화 등 추상적 과제 놓고 골머리
2기 최경환-안종범 '실세 입성' "가보지 않은 길 가겠다"며 경제팀 입성한 최경환
소비부양 위한 '가계소득증대론' 펼쳤지만 단기부양책으로 끝나
3기 유일호-강석훈 '구원투수' 경기부양책 한계 도달한 정부, '오래된 환부' 기업구조조정 칼 빼들어
경제정책, 성장보다 체질개선에 집중해야
[저성장 극복 '소프트 파워'에 길이 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경제정책 분석.. 근혜노믹스에서 유노믹스까지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또 출범 직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나 대선캠프에서 경제정책의 목표는 최소한 이명박정부 때의 '747공약'과 같은 양적 성장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정권의 밑그림을 그렸던 사람들 머릿속엔 창조경제라든가 경제민주화 등 가치와 구조의 전환이 대주제였다. 이는 '국민행복' '창조경제' 등 가치의 언어를 즐겼던 박 대통령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엔 한국 경제가 이미 저성장 시대로 진입, 더 이상 매력적인 숫자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최소한 정권 출범 초기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재 박근혜정부에서 세 번째 경제팀으로 뛰고 있는 유일호 경제팀에 가장 두려운 건 숫자 '2'가 아닐까 싶다. 2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의 정수 부분이다. 소수점 뒷자리를 얼마까지 방어하느냐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숫자에 대한 공포심은 예상 외로 크다. 한 해의 성장률은 경제팀엔 곧 성적표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구조개혁, 창조경제, 일자리 등 다른 어젠다들을 제치고도 남는다. 박근혜정부에 남은 시간은 사실상 1년 정도다. 남은 시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지난 3년여간의 경제정책을 복기했다.

[저성장 극복 '소프트 파워'에 길이 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경제정책 분석.. 근혜노믹스에서 유노믹스까지

■玄의 '창조경제'현오석 부총리는 대체로 학자적이었고 조용한 스타일의 경제관료였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보다는 액티브했고, 경제부처 관료들을 대신해 경제수석이 마이크를 잡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두 사람은 과거 경제기획원(EPB) 경제정책국장을 지냈으며 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소위 'KS라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EPB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의 밑그림을 그렸던 주축이자 최고의 정책기획통들이 포진한 싱크탱크였다. 재무부가 소위 '모피아'로 불릴 정도로 조직력과 돌파력으로 무장했다면 이들은 리버럴리스트들이었다. 토론과 수평적 의사결정을 선호했다. 이들은 창조경제로 산업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시간은 리버럴리스트들 편이 아니었다. 2013년 정부 출범 직후 경제부처엔 비상이 걸렸다. 당초 3.0%로 예상했던 그해 성장률이 2.0%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보고됐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좀 더 상황에 대해 공부한 뒤 판단하겠다"(2월 17일)고 말했던 현 부총리는 정부 출범 한 달 만인 3월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1기 경제팀은 느리고 더뎠다. 모든 결정의 청와대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 즈음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불만도 커져갔다. "현 부총리는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만들어보라는 식이었다. 일단 만들어서 가면 토론하는 데 시간을 보냈고, 대부분 청와대에 가서 뒤집히기 일쑤였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는 "1기 경제팀은 청와대에 비해 정부의 주도권이 약했던 시기였다"면서 "청와대가 큰 그림을 짜면 기재부는 그 그림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 구성 과정에 참여했고, 대외적으론 현 부총리가 청와대를 조용히 뒤따라가는 인상으로 비쳐졌다"고 평가했다.

1기 경제팀은 당면한 경제현안보다는 대선공약 구체화에 집중했다. 복지재원 마련이 발등의 불이었고, 창조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경제부처 관료들부터 '창조경제' '경제민주화'와 같은 추상적 과제들을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산업구조를 전환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은 '창조경제'라는 용어에 투영되는 순간 그 모호성과 대통령표 정책이란 한시성으로 인해 굴절돼 갔다. 공무원들조차 잘 모르겠다고 난색을 표할 정도였다. 일부는 기존 정책에 '창조'자만 붙여서 청와대에 보고를 올렸다가 눈총을 맞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공정한 시장경제를 일컫는 경제민주화는 1기 경제팀 내에서 조용히 후퇴했다. 대체로 현오석 경제팀은 창조경제와 이를 통한 경제부흥으로 요약되는 근혜노믹스를 조용히 뒷받침해줄 비서형 관료들이었다. '공신'들이 전면에 서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과거 정부와는 사뭇 달랐다. 한마디로 정권 초기엔 맞지 않는 인선이었다. 다만 1기 경제팀은 대통령 집권 2년차가 시작되는 2014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 EPB로서 정체성을 입증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21세기 축소 버전이었다.

[저성장 극복 '소프트 파워'에 길이 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경제정책 분석.. 근혜노믹스에서 유노믹스까지

■崔의 '내수부양'현오석 부총리를 향해 "어젠다 설정은커녕 아무것도 안 보여 답답하다"고 수차례 불신을 드러냈던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당시 3선 의원)가 2014년 7월 2기 경제팀 수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 부총리는 EPB 관료 출신 친박계 실세 정치인이었다. 청와대 경제사령탑은 대통령 경제공약의 산파인 안종범 수석체제로 꾸려지면서 실세 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경제정책의 전면에 등장했다. 두 사람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유학했다고 해서 위스콘신학맥의 대부 격으로 일컬어졌다.

관료들은 우선 최 부총리에게 상당한 신뢰를 보였다. 두 가지 이유였다. 청와대나 국회를 상대로 정책이 힘 있게 관철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인사였다. 최 부총리는 취임한 지 약 5개월 만인 2014년 말 '닮고 싶은 상사' 1위에 오르며 높은 지지를 받았다. 홍익대 김유찬 교수는 "재임 중 기재부 고위 관료들이 절대 불만을 갖지 못할 만큼 인사를 완벽히 처리해서 내부 신망이 상당했고, 충분히 조직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취임 직후 최 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지도에 없는 길)을 가보겠다"면서 가계소득 증대론을 펼쳤다. 기업이 이명박정부 때 법인세 인하와 고환율 등으로 막대한 유보자금을 쌓아놓고도 고용과 투자에 인색하다는 괘씸죄의 발로였다. 성장공식을 바꿔보겠다는 그의 정책은 기업이 유보자금을 푸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한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로 구현되나 싶었으나 결국 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규제를 푸는 전통적 단기부양책으로 회귀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최경환 부총리 취임 초기엔 초이노믹스라고 해서 기업소득의 가계환류라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가 싶었지만 이내 다시 부동산 가격 띄우기 등 단기부양으로 전환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부터는 노동.공공.금융.교육 4대 구조개혁이 여타 어젠다들을 제치고 부상했다. 최 부총리는 단기적으로는 경기대응을 하면서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을 선언했다. 그러나 경제주체들이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개혁이란 '생살 도려내기'는 이내 한계에 부닥쳤다. 최 부총리는 재임 당시 성장률 4.0%대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2014년 3.3%, 2015년 2.6%로 성장률은 갈수록 하락했다. 정부는 경기대응책을 수출에서 '내수' 위주로 선회했다. 세계 교역구조 부진으로 구조적으로 수출이 한계에 직면한 데다 수출 자체가 국내총생산(GDP) 집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를 들었다.

취약과목인 '내수' 성적을 올리는 게 전체 평점 방어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이었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승용차.가전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 임시공휴일 지정 등 내수정책이 봇물을 이뤘다. 거의 매월 혹은 두 달에 한 번꼴로 굵직한 정책들이 발표됐다. 그러나 정책의 유효기간은 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약발이 다하면 또 다른 유인책을 써서 하락하는 경제심리를 끌어올려야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 경제성장률 둔화, 경기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수출부진인데 정부 정책은 전부 내수진작책에 쏠려 있어 포인트가 안 맞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당장 내수부양책을 내놓아도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어 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2%대 이상 증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성장 극복 '소프트 파워'에 길이 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 경제정책 분석.. 근혜노믹스에서 유노믹스까지

■柳의 '구조조정'2016년 1월 취임한 유일호 부총리는 취임 100일간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직전 최 부총리 당시 2015년 하반기 내수부양책을 끌어다쓴 통에 막상 유 부총리가 취임한 연초엔 소비절벽이 문제가 됐다.

유 부총리는 전임자들에 비해 부양책에 소극적으로 나섰다. 문제는 그가 쓸 수 있는 단기부양 카드가 더 이상 없다는 얘기가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쓸 수 있는 건 기존 개별소비세 인하를 재연장하는 등의 현상 유지 정책들이었다.

금리는 최 부총리 재임 당시 이미 네 번을 내린 상태였고,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1000조원을 바라봤던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추계대로라면 올해 말이면 국가부채도 GDP 대비 40%를 넘어서게 된다.

관료들은 더 이상 새로운 정책수단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정책을 쓰지 않는 것도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단기부양책들도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환부가 등장했다. 기업 구조조정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시작으로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앓고 있었던 기업들이 한계선에 도달했다.

김유찬 교수는 "레임덕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으며, 국민들이 신뢰를 거두는 단계이기 때문에 유 부총리로선 확실히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경수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고성장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저성장 시대로 연착륙할 것인가에 있다"면서 "이 연착륙을 위해 정부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양적 정책 대신 경제주체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주는 질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정부 내부에서 상충하는 목표와 제한된 정책수단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고, 정책목표와 자원 간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능력, 이에 따른 자원의 배분을 수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타워로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를 흔들 만한 내·외부 충격이 아주 많이 자주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권 차원에서 하고 싶은 것보다도 대내외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쪽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박소연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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