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초기자본조달 규모 갈수록 늘어나는데 한도 낮고 비용 많이 들어
올 1월 한국에 이어 5월 미국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법이 시행됐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일시에 제도화됐으나 미국은 처음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기관투자가와 적격투자자에게만 허용하다가 창업주를 위한 법 3조(JOBS Act Title Ⅲ.잡스법)가 시행되면서 비로소 모든 일반투자자에게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할 길이 열렸다.
그런데 미국에서 큰 기대를 모았던 잡스법에 의한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막상 시행 이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은 잡스법에 의한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한도가 너무 낮고, 자금조달에 따른 부대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투자자들이 투자할 만한 좋은 기업들이 굳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잡스법에 의한 크라우드펀딩 제도하에서 기업은 연간(12개월 내) 최대 100만달러까지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문제는 벤처기업들의 평균적 초기자본조달 규모가 2012년 평균 75만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200만달러 수준까지 증가했다는 점이다. 초기 자본조달 규모가 과거 벤처캐피털로부터 최초 조달하는 자금(Series A) 규모까지 증가하면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하는 자금으로는 충분한 초기자금을 모을 수 없게 됐다.
현 제도의 또 다른 맹점은 자금조달 과정 자체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대부분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인 데 이들이 펀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5만~10만달러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변호사나 회계사를 고용해 법에서 요구하는 실사 자료를 준비하는 비용과 펀딩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 게다가 펀딩 성공에 따른 7~10%의 성공수수료까지 지급하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자금에 비용부담까지 떠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소액공모(10억원 미만의 증권발행 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면제)와 유사한 레귤레이션D(Regulation D)에 의한 공모는 평균비용이 1만5000달러에 불과하다는 점도 기업들이 크라우드펀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결국 좋은 기업은 크라우드펀딩보다는 엔젤투자자나 기관투자가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하게 되고, 크라우드펀딩에 나서는 좋은 기업이 없다 보니 투자자들 또한 이 시장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새로운 제도 개선안이 현재 미국 상원에 제출됐다. 여기에 포함된 안은 △연간 자금조달 한도를 100만달러에서 500만달러로 올리고 △다수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특수목적회사(SPV)를 통해 투자자들이 펀딩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것 △주주 수가 500명을 넘을 경우 적용되는 상장기업에 준하는 공시의무를 면제해주고 △투자자들에게 예상 투자수익에 대해 어느 정도 가이던스를 주는 것을 허용해주는 안이 포함돼 있다. 이런 미국 내 크라우드펀딩 제도 개선 논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도 시행 7개월차를 맞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 등 다른 자금조달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스타트업들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할 유인이 별로 없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발행되는 증권은 예탁 또는 보호예수가 되는데 이에 따른 행정소요와 부대비용, 또 다수의 주주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할 만한 당근도 없다.
고훈 인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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