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초고령화 사회'임을 체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근 도쿄에서 겪은 일이다. 도쿄 근교의 한 지하철역 인근 커피전문점.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동네 커피점이다. 오후 2시께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두번 놀랐다. 우선 너무 조용해서였다. 이곳이 도서관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손님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손님의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노인들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혼자 또는 둘이 앉아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50석가량 되는 이 커피점은 홀 가운데 자리가 칸막이가 있는 테이블이었다.
일본 사회는 요즘 여자아이를 원하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부자들이 아들을 원해서 찾아오던 도쿄의 한 클리닉에 요새는 "딸을 갖고 싶다"며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돈이 들더라도 인위적으로 딸을 갖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체외수정한 시험관 수정란을 미국에 보내 성별을 판정해 여아를 출산하는 식이다. 비용은 3000만원 정도. 3년여 전부터 이런 일을 하고 있는 한 회사는 한 달에 70건 정도 문의가 오는데, 그중 70%가 딸을 원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이를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성별 감별의 목적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고령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노후 간호에 대한 염려'에서 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며느리보다 딸에게 노후를 보살펴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했다. 고령화가 양성평등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세계 성(性)격차 보고서 2015, 세계경제포럼)인 일본인의 의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일본 인구문제연구소는 "203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31.5%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의 총인구(1억2711만명) 대비 65세 이상(3342만명) 고령화 비율은 역대 최고인 26.7%(2015년 인구조사)다.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도쿄 수도권과 오사카부 등 대도시에는 지난 25년간 75세 이상 인구가 최대 10% 늘었다. 노인시설에 입주한 노인(168만명)은 10년 전의 2배다. 또 전체 노인의 16.8%가 홀로 거주한다. 반면 어린이(15세 미만)들은 인구의 12.7%.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곧 다가올 '극고령화'의 예고다.
고령화는 인류가 경험해본 적 없는 변화다. 그것이 사회시스템은 물론 의식까지 바꾸고 있다. 실업, 빈곤, 저성장 등 상당한 '비용'도 따른다. 일본 정부는 '경제대국(세계 3위)=인구 1억명(2050년)'이라는 등식을 내세워 고령화 극복에 수십조원을 쓰고 있다. 이를 전담할 장관(1억 총활약 담당상)까지 만들면서 말이다. 현실에 못 미치는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국가적 위기의식은 상당하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2015년 기준 13%. 일본보다 20년 늦지만, 그 속도는 10년가량 빠르다. 우리는 2026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화 진입이 예상된다(한국경제연구원). 여기에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보는 합계 출산율은 1.24명. 일본(1.4명)보다 낮다. 고령화의 쓰나미가 임박했지만 우리는 먼 미래의 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초고령화 진입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년. 두 번의 대통령 임기에 불과하다. 이보다 중대한 위기가 뭣이 있을까.
skjung@fnnews.com 정상균 국제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