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6년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6위로 3년 연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수년째의 '제자리걸음'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필자는 오히려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라고 생각한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아닌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준으로 세계경제포럼이 평가를 하였다면 한국의 순위는 3년 연속 내리막을 걸었을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은 세계 최하위 수준의 노동 부문 비효율성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또한 반등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의 장기화, 북한의 핵 도발로 인한 안보 불안, 심화돼가는 저출산.고령화 현상 등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여러 요인들은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경쟁력 지수가 한 국가의 경제적 경쟁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한 국가의 경제적 위상과 그 추세적 경향을 파악하는 데 있어 유용한 지표이다. 산업화에 있어 한때 후발주자였던 중국은 주요 제조업은 물론 소프트웨어, 제약 등 여러 고부가가치산업에서도 이미 우리나라를 추월했다. 주요 산업별 세계 100대 기업에서 중국 기업 수는 한국 기업 수를 압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소수의 기업에 기대어 한국 경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우리는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숨차게 뛰면서 또 다른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걱정해야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이제 천신만고 끝에 차지한 선진국 대열의 말석에서 밀려날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판단을 내리기에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현재까지의 20대 국회의 모습은 지난 19대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로운 리더를 자처하며 대통령직 도전을 직간접적으로 천명한 일부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무상 등록금, 모병제 등 포퓰리즘적인 정책으로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차기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선거용 포퓰리즘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 자명하다.
무릇 가치 있는 것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창의적 사고, 꾸준한 인내와 헌신적 양보 등 어떤 형태로든 희생이 따라야 얻을 수 있다. 국가경쟁력도 마찬가지이다. 규제철폐, 노동시장 효율성 제고, 법질서 강화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일들은 공무원, 대기업 노조 등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또한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양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한 국가의 리더는 가치 있는 국가적 성취를 위해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달콤한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은 도덕성과 능력을 리더는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처칠의 말처럼 우리의 '피, 땀 그리고 눈물(blood, sweat and tears)'이지 누군가의 말뿐인 약속은 아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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