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소 뮤지컬을 관람을 좋아하는 김지선씨(가명)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자 사기꾼인 따냐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노서아가비’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예매 후 공연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김씨에게 지난달 8일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공연 제작사인 CMP컴퍼니가 일부 스태프의 계약이행 무단거부 때문에 남은 회차 공연이 취소됐다고 공지한 것이다. 환불은 진행한다지만 김씨는 공연을 못 본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제작사 대표 잠적.. 배우·스태프 임금 체불
그러나 제작사 공지와 달리 실제로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서아가비 홍보대행을 맡았던 회사 관계자는 “회사 이미지 손상 우려로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데 배우, 스태프의 피해가 크고 홍보대행사 차원에서 섭외한 배우도 있는데 미안하다"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업계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그냥 덮을 때도 많더라”고 털어놨다.
노서아가비는 인기 걸그룹 나인뮤지스 멤버들이 출연해 주목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 역시 출연료를 100% 받지는 못한 채 공연이 조기 마감되는 바람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나인뮤지스 소속사인 스타제국 관계자는 “멤버들도 출연료 일부를 받지 못한 상황이고 이들에게 첫 뮤지컬이었는데 아쉽다"며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집단행동도 고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보상방안 마땅치 않아.. “문제 업체 제재해야”
이처럼 임금체불 논란에 휘말리면서 뮤지컬이 중단된 경우는 노서아가비 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뮤지컬 ‘록키’는 프리뷰 공연을 하루 앞두고 돌연 공연이 취소됐다. 공연 제작사 엠뮤지컬아트는 “준비 과정상 어려움이 매출부진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손실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제작사는 10월 초부터 11월까지 예정돼 있던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지방 공연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당시 대관처 중 한 곳이었던 울산 현대예술관은 공지사항을 통해 해당 공연이 취소된 이유에 대해 '배우와 스태프들의 임금 미지급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공연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돌려막기가 터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돌려막기란 A공연이 망해도 다른 B공연을 부랴부랴 올려 우선 빚을 갚는 뮤지컬계의 해묵은 관행이다. 더 큰 문제는 배우나 스태프들이 프리랜서 신분이어서 피해를 입어도 법적 보상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프리랜서가 국내에서는 자영업자와 같은 신분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소송 제기시 민법, 형법에 의존해야 할텐데 개인이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이제라도 협회 차원에서 임금체불, 대관료 미납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공연 제작사를 제재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원 교수는 “협회가 공연마다 공탁금을 걸거나 문제 제작사의 경우 대관에 불이익을 줘야 하는데 협회가 강제하기는 쉽지 않다”며 “공연 예산 운영이 투명하지 않아 돌려막기가 벌어지는데 예산 투명화를 위해서는 통합전산망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공연은 막이 오르면 인건비를 해결하지 않아도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제작사가 많다"면서 "물의를 일으킨 제작사들이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방안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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