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블랙박스 신고.. “시민정신 투철”-“화풀이성” 엇갈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2.27 17:31

수정 2016.12.27 17:31

차량 블랙박스·스마트폰 보편화로 교통법규위반 공익신고 급증
최근 5년간 신고 10배 늘어.. 상습 신고자들도 증가세
여성·초보 운전자 등 피해
주부 김모씨(33.여)는 최근 경찰관의 뜻하지 않은 방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교통법규위반 사실확인요청서를 들고 찾아온 경찰관은 "누군가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갖고 진로변경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다"며 "영상을 보고 위반이 확인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전했다. 영상을 확인한 결과 김씨의 차량은 지난 4월 서울 강서구의 한 도로를 주행하던 중 점선에서 실선으로 바뀌는 구간에서 진로를 변경하고 있었다. 김씨는 "평소 운전이 미숙한데다 뒷좌석에 아이까지 태우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며 고의가 아니었다고 호소했지만 위반 사실이 명백해 과태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

차량 블랙박스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이용한 교통법규위반 공익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투철한 신고정신에 따른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김씨처럼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속출하면서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복성 신고도 늘고 있어 각박해진 시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5년간 공익신고 10배 늘어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접수된 공익신고 건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9만5744건 접수됐던 공익신고는 2012년 16만792건, 2013년 20만424건, 2014년 44만5511건, 2015년 65만5291건에서 올해의 경우 11월 기준 101만380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 무려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공익신고의 대다수는 교통법규위반과 관련된 것이다. 올해 제차 신호 조작 불이행이 20만5645건으로 가장 많았다. 신호 또는 지시 위반은 19만7748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중앙선 침범(7만1798건), 진로변경 위반(6만9679건), 끼어들기 금지위반(5만7846건) 등 순이었다. 대부분 블랙박스 또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법규위반과 관련된 것들이 공익신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블랙박스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국민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5년간 공익신고가 해마다 7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습 보복신고 많아지는 추세

교통법규위반 공익신고는 교통질서 확립과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반면 서로를 감시하는 눈으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확산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운전이 서툰 일부 여성 운전자나 초보 운전자 등은 뜻하지 않게 피해를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보복신고와 함께 상습 신고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자를 보면 이전에 했던 사람들이 또 다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사람들은 보복운전을 하려다가 대신 신고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경찰이 정확한 집계는 하지 않고 있지만 한 번 신고한 사람이 앙심을 품고 두 번, 세 번 지속적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포상금 없는데도 화풀이 신고

공익신고는 처음 시행된 2002년에는 신고포상금 제도로 운영됐지만 국민적 반감이 있어 현재는 별도의 포상금 없이 운영되고 있다. 포상금이 없음에도 상습, 보복신고가 많아지는 것은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습 신고자 중에는 화풀이 차원이나 자신이 신고당한 것을 복수하려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차 신호 조작 불이행과 진로변경, 끼어들기 등에 대한 신고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경찰은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최대한 정상참작을 하고 있다. 실제로 공익신고로 처벌되는 경우는 전체의 50~60%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고나 계도 조치를 빼면 과태료나 범칙금 부과는 전체 신고의 25%에 불과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는 고의성을 확인할 수 있다"며 "경미하거나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경고 조치로 끝내고 애매하면 처리하지 않기도 한다.
명백한 것에 대해서만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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