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의 비정상적인 성 착취 시스템을 뿌리뽑으려면 국가가 전면으로 나서야 합니다."
20일 경기 의정부 고산동 기지촌 여성 치유상담소 두레방에서 유영님 원장(64.사진)을 만났다. 두레방은 지난 1986년 기지촌 여성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로 설립됐다. 유 원장은 이곳에서 1997년부터 20년간 성매매 산업을 근절하고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
유 원장은 "한국은 1960년 이후 미군기지 인근에 성매매 여성들을 동원하고 성병 진료소까지 차리며 미군을 위한 성매매를 관리.장려했다"면서 "이른바 '양공주'라고 불렸던 기지촌 여성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성을 착취 당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지적했다.
미군 캠프스탠리 기지 옆에 자리잡은 두레방 건물은 과거 한국 정부가 여성들의 성병 진료소로 활용했다. 현재는 단체에 의해 30~40명의 기지촌 여성이 정신적 고통을 치유받는 상담소로 탈바꿈했다.
기지촌 위안부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는 데는 유 원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와 기지촌 위안부는 모두 국가에 의해 성을 착취 당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다. 그러나 가해자인 국가가 이를 감추고 사회는 손가락질을 했다"며 "피해 여성들을 찾아가 과거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서적으로 출간했다. 또 정신적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원장은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시민단체와 함께 2014년부터 기지촌 위안부 122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제기, 지난 1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반세기 동안 기지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국가가 가해자로 처음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 원장은 "122명의 기지촌 여성은 적은 숫자지만 여러 지원 단체들이 일일이 찾아가 설득해 모였고 결국 국가책임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지촌 여성들이 강제 수용된 부분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피해사실이 대부분 증거불충분으로 인정 받지 못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유 원장은 최근 필리핀 등 외국인 여성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성매매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역시 대부분 브로커에 속아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게 된 여성이다. 단체는 이들을 위해 법률, 의료 지원 등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이 한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대체되고 있다"며 "성매매라는 근본적인 국가폭력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만 달리 양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 원장은 "일제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정상적인 성 착취 시스템을 뿌리뽑으려면 국가가 전면으로 나서서 강력히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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