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가 11개월째 동결됐다. 수출 개선세에 비해 내수 경기가 아직 미약한 회복 흐름을 보이면서 관망세를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세와 다음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 인상 가능성도 한은의 운신폭을 제약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5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 금통위원 7명 전원 만장일치로 0.25%포인트 금리를 내린 이후 11개월 연속 동결이다.
이는 시장의 예상과도 일치하는 결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채권시장 관계자 100명 전원이 이달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인 만큼 금융시장·실물경제에 변동성을 높일 수 있는 금리조정에 나서기보다 관망세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회복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명분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우리 경제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시장의 동결 전망에 무게를 싣게 했다.
실제 올해 1·4분기 가계부채는 1360조원에 육박했다. 4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18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4조6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지난 2~3월 증가세가 2조9000억원 수준인 것과 비교해 그 규모가 1.5배 정도 확대됐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41조7674억원으로 한 달 새 3조2855억원이 늘어났다.
수출은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내수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4월 국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4.1% 증가한 510억 달러를 기록했다.수출 증가율은 5년 8개월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일평균 수출액도 2014년 6월 이후 최대치인 22억7000억 달러로 집계됐다. 63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도 이어갔다.
반면 3월 소매판매(소비)도 전월 대비 보합권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1년 전과 비교해도 1.6% 상승에 불과했다. 비내구재는 증가로 전환했지만, 내구재는 기저효과로 증가세가 크게 축소됐고 준내구재는 1.7% 감소했다. 도소매업도 전월 동월 대비 0.7% 증가했다.
더불어 사실상 6월 금리인상이 기정사실화된 미국과의 금리 차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현재 0.75-1.0% 수준인 금리를 한 차례만 인상해도 국내 기준금리와 같아진다. 내외금리차가 축소될수록 국내 외국인 자금은 해외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가계부채 총량제 도입 등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는 새 정부의 기조를 감안할 때 하반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3월 "가계부채가 총량면에서 볼 때 적극적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라며 가계부채 문제를 우려한 바 있다.
삼성증권 이슬비 연구원은 "한은의 가계부채 우려 증대와 새 정부의 총량관리제를 위시한 적극적·체계적인 가계부채 관리 정책의 조합은 연내 금리동결에도 하반기 중 금통위가 점차 매파적 스탠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지지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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