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 혹은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했던가. 최초의 경험이지만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지금 목격하는 청문회 모습은 하지만 환상이 아니다. 어디선가 본 장면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나 장관 등 고위공직 후보자가 청문회에 설 때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등장인물이 새롭고, 공격과 수비 위치가 달라지지만 스토리 전개는 뻔하다.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면탈, 논문표절, 투기의혹 등을 둘러싼 질타와 해명이 이어진다. 야당은 추궁하고 여당은 감싸는 가운데 의혹에 의혹이 더해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중도사퇴하는 경우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괜히 나섰다가 본전도 못 찾은 셈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청문회를 통과한 경우도 공직자의 도덕성은 이미 상실한 후이다. 국정을 앞장서 이끌어나갈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5대 비리 연루자의 '공직 원천배제'라는 선거공약을 강조했겠는가.
이번의 청문회는 사실 그 같은 공언이 자승자박이 된 경우이다. 과거에 비해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문제들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흔한 말로 당선증의 잉크도 마르기 전이다. 야당은 물론 국민들도 문 대통령과 여당의 현재 입장이 어떤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 현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당연하다. 공약은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야당시절 청문회 공세가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우원식 원내대표의 고백도 있었다. 어제 때리는 입장에서 오늘 맞는 입장이 되어 보니 얼마나 아픈지 알겠다는 말이다.
사실 인사청문회 제도는 그 모국인 미국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임명에 상원의 '권고와 동의(advice and consent)'를 받도록 돼있는 미국 헌법규정에 근거한 제도이다. 본래 취지는 국정운영에 행정부와 입법부가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초기에 비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임용후보자의 범위가 확대되고 검증과 인준심사 절차는 점점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물 검증에 거의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문회를 거치는 경우나 행정부의 검증만을 거친 경우나 문제 인물의 임용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사청문회야말로 남쪽의 귤이 북쪽의 탱자가 되어버린 예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인재를 고르는 절차가 아니라 대상자의 약점을 캐내는 절차가 되고 있다. 어떤 기준이 공직부적합자를 걸러내는 데 필요충분한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른바 도덕성과 업무역량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도 합의되지 않았다. 먼지털이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어야 하는지는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늘 쟁점이 되는 위장전입만 해도 그렇다. 별 것 아닌데도 걸려 넘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성이지만 멀쩡히 통과된 후보자도 부지기수다.
인사청문회에 관한 한 정치권의 추억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과거에 비추어 서로 역지사지할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권교체로 여당과 야당 역할을 모두 해보았고, 공격도 수비도 해보았고, 때려도 보고 맞아도 본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이 함께 새로운 인사청문회 상을 정립할 때가 된 것이다. 일단 5대 비리를 중심으로 그동안 문제시된 사안들을 유형화하고 세부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이기 때문에 새로운 모색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쓴 경험을 교훈으로 삼지 못한 채 여전히 쳇바퀴만 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담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보아도 지금의 야당이 다시 집권할 시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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