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지닌 청년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초혼 연령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가정을 이뤄 잘 살길 바라는 부모들은 자녀가 30대 후반이나 40대를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미혼 상태로 남은 것이 여간 속 태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녀의 학창시절에는 좋다는 학원이나 과외를 쫓아다니며 교육에 손을 쓸 수 있었지만, 성인을 넘어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의 자녀의 결혼을 어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마냥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해서 혼기가 꽉 찬 자녀를 내버려 두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여성들에게 내 아들 혹은 딸 좀 만나보라며 불쑥 말을 꺼내는 부모도 있다.
■ "인상이 좋아 우리 아들 만나봐"
최근 간호사 일하던 여성 A씨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 마지막 날이 되자 환자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몇 해에 걸쳐 장기 입원 중인 환자부터 짧은 시간 함께한 환자들까지 일일이 인사를 다녔다. 그러다 장기 입원 중인 60대 여성 환자를 만났다. 이 여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자 갑자기 두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마음에 들었다며 미적거리다 말을 못했다면서 자신의 아들과 꼭 혼사를 시키고 싶었다고 말을 꺼냈다.
A씨는 놀랐지만 어른들의 으레 덕담이겠거니 하며 잠시 듣다가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여성 환자가 손을 꼭 잡고 놔주질 않았다. 난처한 A씨와는 달리 여성은 간곡히 호소하듯 아들이 50세 밖에(?) 안됐지만 머리도 좋고 사업도 해서 돈도 잘 번다고 소개했다. 그제야 A씨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며 자리를 뜨려 손을 뿌리치고 나서는데 뒤통수에서 여성의 마지막 말이 그동안에 좋았던 기억마저 잊히게 했다. 이 환자는 A씨가 자신의 요청을 받아주지 않자 괘씸했는지 "남자 얼굴 너무 밝히면 못 써"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A씨는 "덕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짜고짜 혼담부터 꺼내는 아줌마들을 볼 때면 내가 무슨 상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불쾌할 때가 있다"라고 밝혔다.
직장인 여성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평일 저녁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던 중 역에서 할머니가 탔다. B씨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할머니는 B씨를 부르더니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어 주곤 "우리 아들 명함인데 꼭 한 번 만나봐"라고 했다. 당황한 B씨는 황급히 옆 차로 자리를 피했다.
■ 내 부모가 하는 '결혼 압박'도 무시하는데…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 3월 17일부터 20일간 20~30대 미혼남녀 374명(남 186명, 여 188명)을 대상으로 ‘결혼 압박’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미혼남녀 10명 중 7명(72.7%)은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사람은 주로 ‘부모님(59.1%)’이었으며 '친구(23.3%)', 직장 동료 및 상사도 11.8%에 달했다. 청년들은 집이나 사회에서나 하물며 친구들에게서 까지 심심치 않게 결혼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 친구, 직장 동료 등으로부터 결혼을 압박하는 잔소리를 들어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는 응답자는 전체 미혼남녀의 6.4%에 불과했다.
결혼을 압박하는 잔소리에 대부분의 미혼남녀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42.2%)’고 답했다. 이어 ‘무례하고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든다(28.6%)', '내가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22.7%)'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중 70.8%가 아무리 주변에서 결혼을 압박한들 무시하거나 오히려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고 답한 것이다.
과거 자녀의 혼인은 부모의 몫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결혼의 선택과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일은 온전히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임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부모가 결혼을 부추기거나 며느리 혹은 사위를 삼고 싶다는 표현을 막을 수 없겠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무가내식 결혼을 압박하거나 혼담을 꺼내 불편을 겪는 일은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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