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가장 비효율적인 분쟁해결 수단이다. 비용, 시간 그리고 후유증 등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송사 세 번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의 속설이나 "재판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애정이 무뎌간다"는 서양 격언은 같은 말이다. 되도록 소송을 피하라는 충고다. 유독 승복하지 않는 우리의 경우 문제가 더 크다. 일단 송사가 시작되면 대법원까지 가서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한쪽이 이겨도 후유증과 앙금이 남는다. '한쪽은 죽고 한쪽은 다치는' 씁쓸함만 남을 뿐이다.
당사자 간 협상과 타협으로 갈등을 종결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제3자의 중재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법원 역시 재판 진행 중에 조정이나 화해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상지상책(上之上策)은 따로 있다. 분쟁이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 예방하는 것이다. 당사자 간의 권리·의무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애매한 구석이 없도록 해야 한다. 서구의 경우 법이 깨알처럼 상세해지고 계약서가 책 한권에 이를 정도로 두꺼워진다. 조금이라도 모호한 내용으로 해석이 엇갈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사회가 고도로 선진화될수록 불가피한 변화다. 당사자의 선의 대신 법과 계약에 의한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가열되는 양상이다. 수년간 대법원까지 오르내리면서 법원의 대표적인 현안이 된 지 오래다. 최근 기아차, 한국GM 관련 통상임금 판결이 있었지만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는다. 100건이 넘는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라니 최종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후진적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이 사태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노조 승리, 회사 부담'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고 교훈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라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알다시피 사태의 근원에 근로기준법이 있다. 법에는 통상임금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온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한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휴업수당이나 임금보전 등과 관련해서도 통상임금이 쓰인다. 문제는 법이 통상임금의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는 점이다. 통상임금의 정의를 둘러싼 분쟁은 법에서부터 싹트고 있는 것이다. 1953년 법을 제정한 이래 애매모호한 채로 방치한 국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고용부는 고용부대로 '통상임금 산정지침' 등에서 판례 등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노사 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노조는 노조대로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온 게 사실이다. 법원 역시 마찬가지다. 기아차와 한국GM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법원에 따라 결론이 일률적이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재판의 속성이다. 법원은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이라는 통상임금 기준에 더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추상적 잣대로 결론을 내고 있다. 신의칙에 대한 노사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소송으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입법, 사법, 행정, 기업, 노조 모두 가장 값비싸고 비효율적인 수단을 택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총체적 부실, 후진적이란 말도 부족하다.
기아차 판결 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입법적 해결을 공언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입법적으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통상임금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으로 정의한 법 개정안이 나와 있다. 문제 해결에 실패해온 그간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 결론을 얻기까지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문제야말로 청산되어야 마땅한 적폐라는 인식이 시급하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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