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백 입찰 하루 전 정부가 조기상환 입찰 취소를 밝히면서 시장참여자들이 우왕좌왕했다. 정부와 보조를 맞춰서 일을 하는 한국은행 국고증권실조차 이유를 모른다고 하면서 억측이 더욱 난무했다.
이자율 시장의 딜러들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 당황스러워했다.
올해 들어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온 가운데 정부는 자금 관리 미스매치 때문에 취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상규 기재부 국채과장은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있어 미스매치가 있어 국고채 바이백 취소로 미세조정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바이백 취소를 '세수관리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초과세수를 관리하기 위해 국채발행 조기상환 등을 올해 옵션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올해 국세수입이 260조원을 조금 넘을 것"이라며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에 우선 사용하는 것은 유력한 방안 중 하나"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일단 기재부의 입장 등을 볼 때 우선적으로 의심이 가는 것은 자금 관리의 실수다.
A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자금관리 미스매치 발언 등을 감안할 때 결국 정부가 뭔가 계산을 실수한 것같다"면서 "일시적이든 어떻든 자금이 펑크나서 채권을 살 돈이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계산실수를 했으면 프로답게 실수했다고 인정을 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전날 장 마감을 앞두고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제12차 국고채권 매입 취소'라는 공고문이 뜨면서 혼란이 가중됐던 것이다. 오늘 내년 3월 만기가 되는 채권 등 8개 종목 국고채를 바이백하려던 계획은 일단 없던 일이 됐다.
▲ 가격변수 흔들고 스케줄 지키지 못한 정부
다수의 베테랑 채권딜러들은 정부의 입찰 하루전 바이백 취소는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당황해했다. 특히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의해 채권가격이 흔들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B 증권사의 한 딜러는 "정부가 시장과의 대화를 중시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갑자기 바이백을 취소해 버리면서 금리가 떴다"면서 "이건 채권을 매수하려던 딜러들을 당국이 궁지에 몰면서 가격변수에 직접 영향을 준 심각한 사태"라고 꼬집었다.
지난 10월 금리 급등 뒤 최근 들어서 국고3년은 2.2%, 국고5년은 2.4%, 국고10년은 2.6% 정도를 박스 상단으로 인식하고 등락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전일엔 바이백 취소로 이 레벨이 뚫리고 채권 투자심리는 크게 냉각됐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세금이 많이 들어왔으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미리 상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오히려 바이백을 취소하고 다음번 바이백도 할지 말지 모른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는 진단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C 증권사 딜러는 "초과 세수로 인해 바이백을 취소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세금이 많이 남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자금이 필요하다면 정부 입장에선 한은 차입금도 쓸 수 있지 않은가"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부가 채권발행을 미리 알리는 현재의 시스템에 생채기를 냈다는 평가들도 많았다.
예컨대 국채발행계획 등을 통해 정부가 시장에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는데, 그 시스템을 스스로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D 증권사 관계자는 "국채발행계획 일정같은 게 있지 않느냐"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서 채권 매입 등을 준비하는데, 이처럼 바이백을 하루 전에 취소해버리면 딜러들 입장에선 운용 계획이 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각종 추측과 비판 이어진 하루
전날 시장에선 온갖 억측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세수가 많이 들어온 상황에서 바이백을 취소했으니 혹시 12월 국채발행을 아예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규 국채과장은 전일 "12월에 국채 발행을 안 할 수는 없다"면서 "시장에 혼선을 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케줄 대로 움직이는 정부가 초과세수로 12월에 국채발행물량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지만, 아예 발행을 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의 11월 금리인상에 대비해서 정부가 실탄을 아낀 뒤 시장 안정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정부가 금리 흐름에 미리 베팅해서 입찰 시기 등을 조절한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되는 사안은 아니다.
국채과가 기본적인 오퍼레이션에 실패해 혼선을 줬을 것이란 식의 추론들은 상당히 많았다. 세금이 많이 걷혔다고 하지만 제 때 자금을 맞추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 아니냐는 추론이었다. 사실 이런 의심들은 국채과장이 밝힌 자금미스매치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아무튼 온갖 말들이 쏟아진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신뢰의 상실'이라는 견해들도 많았다.
E 은행 관계자는 "국고채는 한국의 대표채권"이라며 "외국인들도 뻔히 보고 있는데, 입찰 전날 취소를 해버리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바이백을 할지 말지, 발행을 얼마나 줄일지 등은 불확실하다.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을 재료로 돌아가는 곳이긴 하지만, 기본 틀을 깨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아주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F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에 기재부가 상당히 무책임한 일을 했다"면서 "바이백을 취소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면 납득을 할 수 있는 일인데, 갑자기 취소를 해 버리니 사람들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 남아 있는 불확실성..정부정책 큰 그림도 보자
이상규 기획재정부 국채과장은 15일 아침 "이달 22일과 다음달 국고채 바이백 여부는 방향이 정해지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우선 22일로 예정된 바이백 입찰 여부에 대해 "의사결정 전이고 빨리 결정할 것"이라며 "이번주 중에 (할지 말지)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바이백 여부에 대해선 "이달 25일 국채발행계획 때 밝힐 예정"이라며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초과 세수 상황에서 바이백을 통해 정부가 빚을 미리 갚으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빚을 빨리 갚는 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고 초과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넘겨서 활용할 수도 있다.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큰 차원'에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국채과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과장은 "초과 세수 문제에 대해 큰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고 국채 발행이나 바이백 물량, 시기 조절 등은 그 한 부분"이라며 현재 재정정책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서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다보니 남는 세금으로 빚을 갚거나(채권 조기상환), 내년 정부의 빚을 줄이는 일(국채발행 축소)에 정부가 나설 수 있지 않느냐는 관측들도 많았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복지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채권발행을 크게 줄이기보다는 남는 세금을 세계잉여금으로 넘겨서 다른 용도로 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내년에도 올해처럼 세금 '풍년'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는 면도 있다.
G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세금이 많이 들어와 채권 물량을 줄일 수 있다면 채권시장의 강세요인"이라며 "이럴 가능성도 있는데, 현 정부의 스탠스를 감안할 때 다른 복지재원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예단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전날 국채과에서 '바이백 취소'를 발표했을 때 '윗선'에서 나온 결정 아니었느냐는 의심 또한 많았다.
정부 쪽에선 정책을 위한 '버퍼'를 만들어 보려 할 수 있다. 세계잉여금으로 적자국채를 줄일 수도 있고 여러 사업을 할 수도 있다.
또 최근 수년간 일상사가 되다시피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이 없다고 100% 자신할 수도 없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 강도를 높인 가운데 부동산 관련 세금은 향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H 은행의 한 딜러는 "지금 경기가 좋지만 반도체 경기가 언젠가 꺾일 수 있다. 또 내년엔 부동산 경기가 꺾여서 세금이 적게 걷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자금을 여유있게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며, 바이백 취소나 향후 추가 바이백 불확실성 등은 국채과에서 혼자 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채과에선 금융시장에 전날 알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항변을 윗선에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거대담론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결국 정부의 큰 스탠스를 볼 때 올해 세금이 많이 걷혔다고 내년에 국채발행을 크게 줄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국채발행규모를 대거 축소하기는 쉽지 않다. 국채를 넉넉히 발행하면 각종 사업을 벌이다가 돈이 모자라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돈이 남아서 받는 비판보다 모자랄 때 받는 비판이 더 크다.
아울러 당장은 정부가 예산안 통과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버퍼를 만드는 게 나쁠 것은 없다. 복지예산, 지방교부금 확대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늘리려고 하는데, 예산 통과가 제 때에 안되면 정부가 곤란해질 수 있다. 또 정부 정책에 반대를 하는 한국당 등 국회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 아닌가 하는 추론도 나온다.
한 회계전문가는 "정부가 바이백 취소 등을 통해 최대한 재량권 범위내에서 세계잉여금을 쌓는 전략을 쓰는 것같다"면서 "세계잉여금은 국가재정법상 예산에 상계하지 않고 국회 동의 필요 없이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백 등을 줄여 세계잉여금을 확대하고 국채발행은 기존 계획 대로 갈 공산이 있다. 대차대조표상 세계잉여금은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니, 이를 근거로 내년 재정정책상 확대발행의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지 않나 싶다"고 추론해 보기도 했다.
여전히 내년 국채발행계획 등에 대한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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