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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국내 생체 폐이식 첫 성공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5 16:08

수정 2017.11.15 16:08

서울아산병원, 국내 생체 폐이식 첫 성공
국내에서 생체 폐이식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10월21일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던 20세 여성에게 부모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이식하는 생체 폐이식 수술을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오화진씨는 원인을 모르는 폐고혈압으로 이미 심장이 한번 멈췄다. 언제 심장이 다시 멈출지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약 없이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환자에게 아버지 오승택씨(55)의 오른쪽 폐의 아래부분과 어머니 김해영씨(49)의 왼쪽 폐의 아래부분을 떼어 이식해주는 생체 폐이식을 진행했다.

이번 생체 폐이식의 성공은 국내에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300여 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폐는 우측은 세 개, 좌측은 두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폐암 환자들의 경우 폐의 일부를 절제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생체 폐이식은 기증자 두 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안전한 수술방법이다.

서울아산병원, 국내 생체 폐이식 첫 성공

환자 오 씨는 지난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의 혈압이 높아져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내보내기 어려워져 결국 심장의 기능까지 떨어지는 특발성 폐고혈압증으로 진단받았다. 지난 2016년 7월에는 심장이 정지되는 위험에 빠졌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이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내 이식수술 규정상 우선적으로 뇌사자의 폐를 기증 받기 위해서는 폐질환 자체가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삽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 대기하는 평균적인 기간이 1456일(2016년 국립장기이식센터)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뇌사자 폐이식 대기자 68명 중 사망한 환자 수가 32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지난 2008년 일본에서 생체 폐이식으로 명성이 높은 교토의대병원 히로시 다떼 교수를 찾아가 생체 폐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말기 폐부전 환자들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

때마침 폐이식 대기중인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병원을 찾아 온 화진씨 부모를 만나 부모의 간절한 요청과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다.

수술 당일 수술을 직접 집도한 흉부외과 교수들 외에도 마취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감염내과 등의 교수진들과 간호사, 심폐기사까지 총 50여 명의 의료진들은 저마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마침내 아버지의 우측 아래 폐와 어머니의 좌측 아래 폐가 각각 화진씨의 오른쪽과 왼쪽 폐로 이식됐다.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화진씨는 수술 후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지난 11월 6일 일반병동으로 옮겨지는 등 현재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딸을 위해 폐의 일부를 기증했던 화진씨의 부모도 수술 후 6일 만에 퇴원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오씨는 "수술 전 숨이 차서 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과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며 "수술 후 6일 만에 처음으로 의식이 돌아온 날이 마침 생일날이었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과 감사한 생각만 들었다"고 밝혔다.

아버지 오승택씨는 "기약 없는 이식 대기기간 중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몰라 매일이 지옥 같았다"며 "수술 후 천천히 숨 쉬는 연습을 하면서 다시 건강을 찾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꿈만 같다. 깜깜했던 우리가족의 앞날이 다시 밝아졌다"고 말했다.

생체 폐이식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일본은 1년, 3년, 5년 생존율이 각각 93%, 85%, 75%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폐이식 생존율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생체 폐이식은 지난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후 201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400건 이상 보고되고 있다. 이번 수술에 참관한 히로시 다떼 교수는 생체 폐이식 수술을 연간 평균적으로 10건 이상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시행된 생체 폐이식의 5년 생존율을 88.8%로 획기적인 성적을 보고하기도 했다.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생체 폐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소아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방법을 제시한 중요한 수술이다"고 밝혔다.


또한 최세훈 교수는 "이번 생체 폐이식 수술은 뇌사자 폐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과 딸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강한 의지가 만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게 됐다"며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가 안정적인 상태"라고 밝혔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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