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인을 존경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월남전 종전 40주년을 맞았던 2015년, 한 언론사로부터 '월남전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주제로 기고 의뢰를 받고 베트남 취재 중 현지에서 들은 충격적 얘기였다.
이달로 한국과 수교 25주년을 맞는 베트남의 국가발전 역할모형(role model) 1호가 한국이다. 베트남에 사는 동포만 12만5000명,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호찌민시 인근 2000개를 포함해 총 5400개가 넘어섰다.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 한국인을 좋아한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인을 존경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는 또 뭔가.
당시 필자는 이 이야기가 당연히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과 관계된 얘기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세칭 '라이따이한'과 관계된 혐한감정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라이따이한'은 일부 한국 언론에 의해 과장된 와전일 뿐 베트남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 아닌가.
베트남 젊은이들은 심지어 월남전에 한국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월남전이 미국을 상대로 벌였던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점을 보다 명쾌히 교육하기 위해 다른 나라 군대의 참전을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이 40년간 이어진 베트남정부의 정책이었다.
베트남인들이 한국인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은 프랑스, 미국과 싸워 독립과 통일을 이뤘고, 이후 군사적 충돌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중국의 간섭도 거부했으나 한국은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미래의 양국관계를 뿌리부터 흔들 심각한 문제가 자라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여성과 그 자녀의 문제다.
베트남 여성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으면 한국인 남편과 사이에 낳은 자녀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베트남으로 돌아간 여성과 자녀들은 대부분 베트남에서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잘 적응하지 못해 이등시민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많다.
당연히 50% 한국인 피를 갖고 있는 이 자녀와 그들의 어머니는 베트남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국적을 유지하기 때문에 베트남 정부의 사회보장제도 등 혜택을 받기 어렵다. 이들은 사실상 한국정부의 보호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결국 이 한국인들은 한국과 베트남 가운데 어느 나라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막연한 기회에 삶을 기대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과거뿐 아니라 20세기 후반부만 해도 프랑스, 미국, 중국과 벌였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데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자존심도 대단히 강하다. 베트남인들은 한국이 좀 살게 됐다고 베트남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는 데 대해 뿌리 깊은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미래의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칠 시한폭탄으로 자라고 있는 이 문제에 한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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