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선익 특파원】 “이름 히나세 로보미(日生ロボ美), 취미는 도움주기, 특기는 타이핑.”
일본생명보험사의 직원 소개 책자에 실린 어느 직원의 프로필이다. 이 직원이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그가 로봇이기 때문이다. 로보미는 데이터 입력 등을 자동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생명보험사는 지난 2014년 로보미를 처음 도입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도쿄 신주쿠구의 하얏트 레젠시 호텔 로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손님을 반기는 것은 벨보이가 아닌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집사 로봇 ‘페퍼(Pepper)’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페퍼는 가까이 다가서자 눈을 마주치며 맑은 목소리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다. 페퍼는 소프트뱅크사에서 판매중인 가정용 상업용 로봇으로 일본에서는 꽤 보편화 됐다. 한국에서도 우리은행이 페퍼를 도입해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로봇 산업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일할 사람이 없는 일본은 인력난을 로봇으로 채워내며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사이타마현 후카야시에서 자원재활용 업체를 운영중인 시타 타츠야 사장은 지난 2016년 가을부터 인공지능(AI)과 로봇을 공장에 들였다. 계속된 인력난에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로봇을 택한 것이다. 시타 사장은 닛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중노동이다 보니 직원이 오지 않았다”며 “폐업까지 고민하다 로봇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로봇 도입후 인력배치에 대변화가 생겼다. 종전 18명이 수작업을 통해 폐기물을 골라야 했던 작업이 단 2명으로 해결이 됐다. AI가 센서로 폐기물을 순식간에 선별하고 로봇 팔이 폐기물을 골라내는 작업을 할 때 최종 검사를 진행하는 최소 인원이 2명이다.
일본의 퍼솔(Persol) 종합연구소는 향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라고 가정했을 경우 2025년 583만명의 노동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노동 생산성 증가율을 지난 20년간 평균치인 0.9%에서 3배 이상인 3%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성은 글로벌 경쟁에서 핵심 요소다. 일본은 이대로라면 생산성 싸움에서 자멸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로봇과 AI활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인터넷 부동산 중개업체 이탄지는 인력난을 AI로 대처해 생산성을 높였다. 현재 상담문의 60%를 AI가 맡고 있다. AI 프로그램 1개가 응대하는 고객은 월 1000명으로 기존의 25배다. 인력난을 AI·로봇으로 대처해 생산성을 극대화한 좋은 예다.
일본의 대형 은행들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앞 다퉈 인원 감축에 나서고 있다. 미즈호 파이낸셜그룹과 미쓰비스UFG 그룹,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그룹 등 3개 대형 금융사는 AI와 로봇을 활용한 핀테크로 단순 합산 3만2000명의 업무량과 인력을 줄일 계획이다. 인구 감소가 계속되는 가운데 은행을 직접 찾는 고객이 갈수록 줄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AI와 로봇 도입으로 1인당 부가가치를 높여 통해 일본 경제를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바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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